[김준술 기자가 독자에게 묻습니다] 성폭행범 막으려 가스배관에 ‘철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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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다세대주택. 벽에 붙은 가스관 위로 뾰족한 ‘가시 철침’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관을 타고 집 안에 침입하는 연쇄 성폭행범(일명 ‘발바리’)이나 도둑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등장한 ‘반짝 아이디어’다. 용답동뿐 아니라 강북구 수유동, 양천구 신월등 등 서울 5개 지역의 다세대주택 160세대에도 이런 ‘가시 장치’가 달려 있다.

서울시가 범죄 예방을 위해 선보인 시범사업으로, 지난 14일 설치 작업이 완료됐다. 1~3층까지의 가스관을 5m 정도로 둘러싸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5만원.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측은 “모든 주택에 설치비를 지원하긴 어렵다”며 “일단 자발적 설치를 유도하기 위한 시범 조치”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스관·배관을 이용한 절도와 성범죄에 대한 ‘치안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근본 해법은 없다. 서울 강남에선 지난 9월 말 아파트 1층에서 가스관을 타고 베란다로 침입해 압구정동 H아파트와 잠원동 L아파트 등 고급 거주지를 돌며 30억원대 금품을 훔친 김모(42)씨 등 10명이 붙잡혔다.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김씨 일당은 경찰 조사 때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면 배관을 타고 1층에서 20층까지 올라간다”고 말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2일 충남 천안에선 가스관을 타고 원룸에 침입해 22차례 금품을 훔친 40대가 붙잡혔고, 지난 6일엔 전남 광양에서 원룸 가스관을 타고 여대생 집으로 들어가 성폭행하려던 교사가 6개월 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시가 14일 성동구 용답동 등 5개 지역의 다세대 주택에 설치 완료한 ‘가시 배관’. 범죄 예방을 위해 시범적으로 부착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제공]

끊이지 않는 범죄와 불안감에 ‘가시 철침’까지 등장했지만 경찰은 이 같은 범죄에 대처할 묘수가 없어 골치를 앓고 있다. 2000년부터 경기도 파주·의정부시 등에서 가스관을 타고 여성 125명을 성폭행한 30대는 올 9월에야 붙잡혔다.

경찰청 형사과 이재승 경위는 “초반 검거가 중요한데 여성들이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꺼려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며 “가스관·우유 투입구에 철망을 설치하거나 창문을 열었을 때 감지 벨이 울리게 하는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자에게 묻습니다=가스관을 이용한 성폭행이나 절도를 막을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까요. e-메일 등으로 보내 주신 의견을 골라서 강희락 경찰청장에게 직접 건의하겠습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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