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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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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나는 벌레도 정원에 가득히 노닐고 있네/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

임금의 시름을 달래준 한 잔, 그것은 막걸리였다. 폐위되던 그 해, 연산군은 시성(詩聖) 두보의 시 '낙일(落日)'을 빌어 막걸리를 예찬했다. 직접 막걸리에 관한 시를 지어 승정원에 술과 함께 내려 보내기도 했다. 모두 『연산군 일기』에 전한다.

‘강화 도령’ 철종도 막걸리를 사랑했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임금이 된 그는 갖은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궁중에는 왜 막걸리가 없느냐”고 타박을 했다. 그런 임금을 위해 중전이 친정집 노비를 통해 막걸리를 구해왔다고 한다. 나중에는 상궁을 시켜 서울 근교에서 막걸리를 만들고 은밀히 궁에 들여왔다고 전한다.(남태우, 『주당들의 명정과 풍류』)

이렇게 임금의 사랑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었다. 『세종실록』에는 변방으로 나간 군인들이 조밥에 막걸리만 먹었다고 불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술을 의인화한 『국선생전』을 지은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수입이 줄어들면서 부득이하게 백주(白酒·막걸리)를 마시게 됐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서민의 술’이자 ‘임금의 술’이었던 막걸리는 ‘대통령의 술’이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모심는 농민들과 논두렁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이는 모습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웃과 함께 막걸리를 즐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막걸리 국제홍보팀장’을 자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 오찬에 곁들일 술로도 막걸리가 마지막까지 거론됐다. ‘미국 대통령도 마실 뻔한 술’이랄까.

막걸리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11월 셋째 목요일인 19일 햅쌀막걸리가 ‘막걸리 누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같은 날 출시되는 프랑스산 햇와인 ‘보졸레 누보’를 겨냥한 마케팅이다. 예약 판매에선 보졸레 누보를 앞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1965년 쌀로 술 빚는 일이 금지되면서 등장한 거친 맛의 ‘밀가루 막걸리’든, 유기농 쌀로 만들어 유리병에 담은 막걸리든 시름을 달래는 술임엔 변함이 없다.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밥이나 마찬가지다/밥일 뿐만 아니라/즐거움을 더해주는/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라고 노래했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구희령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