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일본 장기투자 이끄는 사와카미펀드 사장 사와카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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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집 안에 돈을 쌓아둔다고 해서 ‘장롱예금’이라는 말이 있는 나라. 현금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장기투자의 기치를 내걸고 펀드 돌풍을 일으킨 ‘사와카미펀드’가 올해 펀드 운용 10주년을 맞았다. 이 회사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62·사진) 사장이 애널리스트 14명을 포함해 모두 64명의 소수 인력을 이끌고 2200억 엔(약 2조8000억원)의 펀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자주 쓴맛을 본다. 장기투자가 대안이 될 수 있나.

“미국에서 20~30년간 주식을 묻어두면 투자수익률이 물가상승분을 제외하고도 연평균 6.8%에 이른다. 증권이론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겔 교수가 조사한 결과다. 어떤 시점에 투자해도 장기투자하면 주식은 반드시 연 6.8%의 수익을 냈다. ‘6.8%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주식은 사는 것보다 파는 기술에서 성과가 결정된다고 한다. 20~30년 계속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 않나.

“그런 생각 자체가 단기투자용이다. 우리는 장기투자를 하므로 길게 보고 투자한다. 펀드의 공식 명칭이 아예 ‘장기보유형 펀드’다. 장담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금액이 계속 커진다. 장기적으로 자산을 형성하는 펀드다. 그래서 단기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투자를 권유하지 않는다. 아직 10년의 역사밖에 안 됐다. 그러나 이제부터다. 20~30년 후에는 결실이 나타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50~60년 된 장기 펀드가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 올 것이다.”

-증시 전망을 낙관하는 이유는.

“세계 인구는 현재 68억 명이다. 앞으로 매년 1억 명씩 늘어나 2050년에는 92억~100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인구가 늘수록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수요가 늘어난다. 사람들은 더욱 윤택한 삶을 희망한다. 인구 증가와 잘살고 싶은 욕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게 있는 한 장기투자를 통해 유망 기업의 경영 과실을 얻을 수 있다. 더블딥은 걱정하지 않는다. 단기투자자들은 그걸 의식하지만, 장기투자자에게는 기회다. 바닥은 상승 반전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도 언젠가 끝난다. 고성장은 어렵지만 3~4%의 성장률이 돌아올지 모른다.”

-최근 1년간 힘들지 않았나.

“주가지수가 내려가면 투자자들이 일반적으로 주식을 팔지만 우리는 이때 현금을 더 많이 투입한다. 주가는 2007년 8월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올 3월까지 떨어졌다. 우리는 이 기간에 1400억 엔어치를 사들였다. 최근 1~2년 사이 종목을 조금 수정하고, 보유 현금을 투입해 주식을 많이 샀다. 현재 운용액 2200억 엔 가운데 95%가 주식이다.

-10년간의 성과는.

“1999년 8월 첫 펀드 설정 이후 지금까지 18.1%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연평균으로는 1.6%다. 일본에서는 은행 예금금리가 0.1%다. 지난 5년간 수익률은 -4.3%, 최근 1년간 수익률은 21.9%다.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단기투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전부터 투자했고, 87년 블랙먼데이 때도 투자했다. 중요한 것은 폭락했을 때 사는 것이다. 지금도 눈을 딱 감고 투자할 때다.”

-한국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너무 높다.

“너무 올랐다. 어느 순간 이게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인구가 늘지 않고 고령화된다. 그러면 주택 수요가 줄어든다. 한국도 장기적으로는 더 이상 오르는 것은 어렵다. 일본이 같은 전철을 밟았다. 일본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공실률이 13.1%에 달해 일본 전체에서 빈집이 760만 가구에 이른다. 도쿄 근처의 교외에 엄청 많다. 팔리지 않는다. 이렇게 된 것이 10년 전부터다. 인구가 줄면서 빈집이 계속 늘고 있다. 한국도 너무 많이 올랐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부동산 투자는 베트남이나 인도 같으면 괜찮다. 한국에선 오히려 삼성전자가 낫다. 글로벌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이상적인 재테크 모델은.

“일본을 예로 들자. 일본은 개인 자산이 1400조 엔에 이른다. 이 중 주식·투신은 10%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부분은 잦은 매매 때문에 손실이 발생했다. 은행예금은 개인 자산의 55%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796조 엔이다. 이 가운데 10%만 주식시장으로 이동해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장기투자가 본격화하면 현금이 있는 사람에겐 기회가 있다. 이게 우리가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 뒷바라지가 끝날 때까지는 장기투자를 통해 최대한 자산을 증가시키는 재테크 전략이 이상적이다.”

-반드시 지키는 투자 원칙은.

“투자하는 기업이 장기간 성장할지를 본다. 소비자가 그 회사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 2~3년 만에 유행이 끝나면 안 된다. 글로벌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윤리의식을 갖추고 있는 회사인지 살핀다. ”

-종목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세계 경제 성장의 과실을 딸 수 있는 기업을 집중 선택한다. 일본에선 TV를 별로 사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인도·베트남은 윤택해질수록 TV를 많이 살 것이다. 이곳의 수요를 충족해줄 수 있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투자 대상이다. 개발도상국이 성장하면 에너지·자원·식품·물 부족이 심화되고 환경이 악화된다. 앞으로 부족해지는 것을 공급해줄 수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다. ”

도쿄=김동호 특파원

■사와카미는
우량 주식 20~30년 투자 모델 만들어

사와카미투신은 우량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는 가치투자의 대명사가 됐다. 길어야 3~5년 투자에 그치는 관행에서 벗어나 무려 20~30년에 이르는 장기투자가 전문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드문 투자 모델이다. 1999년 수백 명에 그쳤던 고객은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사와카미투신의 설립자인 사와카미 사장의 투자철학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장기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 출신의 사와카미 사장은 일본에서 유명한 상인들을 많이 배출한 아이치(愛知)현 출신이다. 마쓰시타(松下)전기무역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73년 스위스 제네바대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한 뒤 현지 캐피털인터내셔널에서 펀드 운용을 시작했다. 야마이치(山一)증권의 펀드 어드바이저를 거쳐 96년 사와카미투신을 설립했다. 펀드 운용은 99년 시작했다. 장기투자 모델의 정착에 앞장서면서 쓴 『15년 후의 일본을 지금 사두자』 『당신도 장기투자자가 될 수 있다』 『성공하는 장기투자』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에서도 번역되면서 유명해져 ‘일본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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