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살해 60대 여성 사형 美대선 새 불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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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한 미국 여성에 대한 사형집행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주인공은 24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의 헌츠빌 주립교도소에서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둔 베티 루 비츠(62). 1976년 미국 대법원이 사형제도의 부활을 인정한 이래 처형된 네 번째 여성이다.

그녀는 85년 댈라스의 소방서장이던 다섯번째 남편 지미 돈 비츠를 생명보험과 연금을 타내려고 총기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두번째 남편도 폭행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고, 정식 기소는 안됐지만 네번째 남편 살해 의혹도 받았다. 검사들은 그녀를 '검은 마녀' 라 부르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비츠가 여성이고 다섯번째 남편의 살해 동기가 오랜 가정폭력 때문이었다는 비츠의 주장은 동정 여론을 불러왔다.

특히 사형제도 반대론자들과 일부 여성단체들은 5명의 자녀와 9명의 손자, 6명의 증손자를 둔 비츠에 대한 형벌을 종신형으로 감해달라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비츠가 미 언론의 큰 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조지 W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텍사스주에서 처형됐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법에 따르면 부시는 주지사로서 30일간 집행을 유예하고 재조사를 청구할 권한이 있다.

부시의 주지사 사무실에는 비츠의 사형집행에 반대하는 전화와 편지가 2천여통이 넘게 쏟아졌다. 부시가 '자비로운 보수주의자' 라던 그간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도 대두됐다.

그러나 부시는 "사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비츠를 처형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의견에 동의한다" 며 사형집행을 강행했다.

부시는 또 95년부터 주지사로 재임하면서 한명의 여성을 포함한 1백20여명의 사형집행을 허락한 예에 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의 지지자들도 오히려 부시가 사형집행을 유예했다면 선거용이라는 의혹을 샀을 것이라며 부시의 입장을 옹호했다.

텍사스주에서는 별다른 반대여론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는 3월 1일에도 텍사스에서는 또 한건의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미 대선 정국에서 사형제도가 또다른 논쟁거리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지 라이언 일리노이주지사는 지난달 "일리노이주가 1977년 사형제도를 부활시킨 이후 사형수 12명에 대해 형을 집행했으나 사형선고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 석방된 경우가 13건에 이르렀다" 며 사형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질 때까지 사형집행 유보를 선언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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