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다시보기]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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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96년 출간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지음.들녘.9천원)은 역사서로는 드물게 1백여만부가 팔리며 우리 사회에 역사읽기 붐을 일으킨 책이다.

출판 1년만에 40만부 가까이 팔릴만큼 선풍을 일으켰던 이 베스트 셀러는 여전히 인기를 잃지 않은채 한달에 5천부 이상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국역본으로 4백30권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 을 한권으로 읽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는 식자층의 못마땅한 눈초리에도 아랑곳없이 일반인들은 1백만명이나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지식인들과 역사학자들이 '한권으로…' 를 비난하는 바로 그 이유, 예를 들어 '지나친 축약' 이나 '주석 하나 없는 이야기식 글쓰기' '순 한글' 때문에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단 한권으로 쉽게 조선사를 훑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깨알같은 주석이나 어려운 한자가 없어 술술 읽어내려 갈 수 있기 때문에 역사서가 아닌 교양서로 책을 대하는 사람들은 이를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릴적 읽었던 만화 역사책의 맥을 잇는 '그림없는 만화책' 인 셈이다.

이 책의 성공 이후 저자는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고구려본기' 등을 계속 써냈지만 역사학자는 아니다.

대학에서 독어와 철학을 공부한 후 잡다한 글쓰기를 해온 전문 집필가다. 학계는 비전공자의 대중적 역사쓰기가 성에 안찰지 몰라도 일반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성공했다.

저자는 '이야기식 사전' 이라는 말로 '한권으로…' 을 설명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이야기' 나 '사전' 의 기능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처럼 저자의 독특한 평가를 수려한 문체에 담은 것도 아니고 사전이라 부를 만큼 정보가 충실하지도 않다.

하지만 태조에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대에 걸친 왕들과 그 주변 인물들을 순서대로 잘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단편적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우리 역사적 사건들을 큰 줄거리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은 평가할만하다.

또 짤막하나마 야사나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해석, 당대의 세계 약사를 곁들여 이해를 돕는 것도 이 책이 다른 책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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