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中. 겁없는 투자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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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방금 나스닥이 개장했을텐데, 지금 장세가 어때요?" 최근 신문사 경제부에는 미국 나스닥시장이 개장되는 오후 10시30분(한국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미국 나스닥과 코스닥이 닮은꼴로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빚어낸 단면이다. 나스닥 챙기기는 이제 상식이다.

하루에 같은 종목을 수십번 사고 파는 데이 트레이딩이 주식투자의 모델로 자리잡고, 주식공모에는 투자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있다. '코스닥 신드롬' 은 이렇게 확산되고 있다.

◇ 투기 조짐 보이는 투자 열기〓증권가에는 '아침 출근할 때도 현금, 저녁 퇴근할 때도 현금' 이라는 새로운 투자격언이 널리 퍼져 있다.

나스닥시장(한국시간 오후 10시30분~오전 5시)의 결과에 따라 아침에 주가가 폭락할 수도 있으니까 항상 현금으로 주식투자에 임한다는 전략이다.

대신증권 나민호(羅民昊)투자정보팀장은 "사이버 트레이딩 보급으로 아침에 샀다가 저녁에 파는 단타매매가 가능해지면서 밤 사이에는 현금화해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 증시가 기업의 내재가치나 영업실적과는 무관하게 외부적 변수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하면서 단타매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대우증권 이항영(李恒榮)투자정보부장은 "코스닥에 있다는 점만으로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 입장에서는 코스닥을 외면할 수 없다" 며 "같은 종목을 하루에 수십번 매매하는 경우가 늘면서 거래대금도 크게 늘고 있다" 고 말했다.

단타매매로 모두 재미를 보는 것은 아니다. D증권 압구정지점 관계자는 "15억원 정도 굴리는 투자자가 하루에 20여 차례 사고 팔기를 거듭하는데, 지나고 보면 될 만한 종목을 골라 3~4일 보유하는 것보다 수익률이 낮다" 고 말했다.

L증권 강남지점 관계자도 "거래소시장에서 3억원을 투자하다가 1억원을 날린 사람이 최근 코스닥으로 투자처를 옮기면서 하루 5~6회 단타매매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원본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주문을 손바닥 뒤집듯 낼 수 있는 사이버 트레이딩의 특성을 악용해 주가조작에 나서는 투자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작전수법은 허수주문. 우선 대량으로 하한가 주문을 내 주가를 끌어내린다.

이어 싼값에 주식을 사들인 뒤 다시 고가로 주문을 내 주가가 오르면 되파는 수법이다. 증권업협회 박병주(朴炳珠)감리부장은 "단타매매가 극성을 부리면서 허수주문이 감지되고 있지만 호가 자체는 불법이 아니어서 단속이 어렵다" 면서 "예방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고 말했다.

◇ 사기성 인터넷 공모도〓코스닥 열풍을 타고 최근에는 프리코스닥(코스닥 등록을 준비하는 단계)기업들의 인터넷 공모에도 과열투자가 벌어지고 있다.

회사 이름에 '텔' '컴' '텍' 등 인터넷.정보통신 기업이라는 냄새만 풍기면 코스닥에 등록된 이후 공모가의 10배 이상 나가는 경우가 속출해 '대박' 이 터지기를 바라는 '묻지마 투자' 가 성행하고 있는 것.

하나증권 강진성(姜眞成)기업금융본부장은 "어차피 신기술 분야이기 때문에 들어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따져볼 생각도 않고 무작정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 말했다.

더구나 10억 미만 공모는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이 면제돼 9억9천9백90만원 규모의 인터넷 공모가 속출하고 있다.

코스닥시장 등록 관련 법률업무를 취급하는 퍼스트로벤처의 최철(崔哲)변호사는 "인터넷 공모는 줄을 서거나 서류를 제출하는 재래식 공모와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개시 직후 1분이면 완료된다" 고 말했다.

인터넷 공모의 이런 특성과 투자자들의 요행 심리를 악용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사업을 부풀려 인터넷 공모를 시도하고 있다는 혐의로 미다스칸.포럼디지탈 등 벤처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피해 사례 조사에 나섰다.

프리코스닥 전문회사 3S커뮤니케이션의 장성환(張誠桓)사장은 "인터넷 공모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검증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 회사 성장 전망을 지나치게 부풀려 내놓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조차 확인이 어려운 사업전망을 토대로 거액을 내건 투자자들의 장래는 그야말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만의 하나 운이 나쁜 투자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할 경우 코스닥은 물론 전체 증권시장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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