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외길 통신명장 기술만으로 학사모-허원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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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 최고의 명장 칭호도, 20여년간 실무경험도 학력이란 벽 앞에서는 번번이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제가 받은 대학 졸업장이 이제 현장에서 터득한 기술과 경험도 대학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 못지 않은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됐다는 신호탄이길 바랄 뿐입니다. "

24년 동안 통신 한 분야에 매달려온 '통신 명장' 허원녕(許元寧.48.한국통신 거제전화국 장승포분국장)씨는 21일 자신이 받은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장의 의미를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는 1998년 도입돼 이날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제1회 학위수여식을 가진 학점은행제에 따라 학사학위와 함께 특별상을 수상했다.

5세때 부친을 여읜 그는 거제 연초중학교를 졸업하고 76년 거제전화국에 들어오면서 전화국 인생을 시작했다.

중졸 학력이었지만 한번 손에 잡은 기계는 도가 트일 때까지 놓지 않던 許씨에게 송신.교환.전화기와 장비.선로 업무까지 주어지는 전화국 일은 '물반 고기반' 격이었다.

그는 85년 스웨덴 전전자교환기(AXE-10) 첫 도입 당시 발생한 시스템 장애를 해결하는 등 업적을 쌓으며 정보통신과 전자관련 자격증을 8개나 취득했다.

92년 통신설비 기능장과 94년 정보통신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같은해 국내 유일의 대한민국 통신설비 명장에 선정됐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중졸의 굴레는 벗겨지지 않았다.

"78년 첫 전자교환기를 도입하기 위한 벨기에 인수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에서 당연히 앞서있다고 믿었지만 학력 때문에 탈락했을 때 가장 서글펐습니다. 이후 승진에서 밀려나기도 했지요. "

주경야독 끝에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인정받았고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간 그는 교양과정을 이수했지만 과중한 현업 부담으로 결국 자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許씨는 학점은행제 도입에 따라 각종 자격증과 기술력으로 전공학점을 채워나갔고 올초 학사학위 인정기준인 1백40학점을 넘겨 대학 졸업자가 됐다.

학점은행제 학사학위 수여식에서는 9개 분야 학사 1백11명과 5개 분야 전문학사 5백39명 등 6백50명이 학위를 받았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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