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천몸살과 시민단체의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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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3당이 1차 공천자를 발표한 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공천심사위원 폭행사건에 이어 앞으로도 당내 반발과 탈당.당적 이동.신당 창당 등 파문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몇몇 계파 보스들과 중진들이 공천 지분을 갈라먹던 구 정치행태가 빚어낸 결과물일 따름이다. 구 정치거물들의 탈락은 그런 의미에서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다만 중진이나 현역 의원들의 탈락은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기준으로 설명돼야 한다고 믿는다. 단순히 다선(多選)이기 때문에, 구세대이기 때문에, 또는 당 총재의 1인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잘랐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당선 경쟁력에서든, 아니면 구 정치의 퇴출(退出)을 위한 것이든, 비리 혐의든 간에 최소한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아직껏 일언반구(一言半句) 설명이 없다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한 처사다.

이번 공천결과 가장 난감한 입장에 빠진 것은 시민단체들이다. 총선시민연대가 요구한 1백8명의 낙천 대상자 중 36%에 달하는 39명이 재공천됐으며, 출마 포기자 등을 제외한 실질적 대상자만으로 따지면 절반 이상이 재공천됐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이상적 요구는 현실정치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오히려 시민단체의 공천개혁 요구는 각 당의 당내 갈등 해소나 총재체제 구축에 이용된 꼴이 됐다.

총선연대가 안이하게 낙관했던 낙선운동은 큰 시련을 받게 됐다. 선거가 시작되면 '시민단체 대 정치권' 의 대결양상이 표면화할 것이며 각 당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단체들이 의지할 곳은 유권자들의 지지뿐이다. 따라서 총선연대는 이제 낙관론을 거두고 유권자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 운동의 방식과 룰을 새로이 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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