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피플] 천재화가 '부시맨' 영국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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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지난 17일 세인트 제임스궁에서 연두색 옷에 알록달록한 관을 쓰고 깃털장식 목걸이를 한 맨발의 사나이를 접견했다.

에콰도르 아마존에 사는 세코야족(族) 추장의 아들 라몬 피아구아제(38). 그는 지난달 51개국 2만2천명이 참가한 세계 최대 회화 경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시상식에 참석하려고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이다.

피아구아제는 영국 미술재료 회사인 윈저 앤드 뉴턴사(社)가 후원한 밀레니엄 회화경시대회에서 작품 '영원한 아마존' 으로 대상을 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였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나중에야 그의 신원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의 거주지는 가장 가까운 도시도 5백㎞쯤 떨어져 있는 아구아리코강 근처의 쿠베야노 국립공원이었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보트.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라파엘 이전 시대의 화풍을 보여줬다' 고 평한 대상 수상자가 평생 미술 교육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인디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피아구아제는 7년 전만 해도 물감의 존재도 몰랐다'고 한다'.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끄적이거나 잉크를 찍어 종이에 스케치를 하는 정도였던 그는 이 지역을 방문한 미국의 인류학자 윌리엄 비커스를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비커스가 준 몇 개의 유화물감은 피아구아제에게 새로운 '색(色)의 세계' 를 열어 주었다. 그는 아내와 네명의 자녀를 돌보는 것도 잊은 채 자연의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색채를 화폭에 담아내는 데 미친듯이 빠져들었다.

밀림 속의 이상한 화가에 대한 소문은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까지 퍼졌다. 지난해 한 미술상이 그에게 이번 미술대회에 대해 알려줬다.

피아구아제는 파괴되고 있는 고향의 열대림에 대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대회에 출전했다.

원유 채굴자들과 벌목꾼들에 의해 자기 부족의 수천년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걸 고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술대회 심사위원장이었던 아마추어 화가 찰스 왕세자를 만나서도 아마존의 심각한 환경 문제를 설명했다.

"6백여명의 우리 세코야족은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듯한 아픔을 느낍니다'. 아마존의 열대림은 인류의 자산입니다. 그걸 보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

그의 작품은 다른 1백25개 입상작과 함께 2월 23~26일 런던의 몰 갤러리를 시작으로 3월 스톡홀름, 7월 뉴욕에서 '2000년의 우리 세상'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된다.

수익금은 모두 왕세자 재단과 유엔아동기금에 기탁될 예정이다. 피아구아제는 상금 1만 파운드(약 1천7백65만원)를 세코야족을 위해 모터가 달린 카누를 구입하고 대나무.야자수로 만든 전통집을 짓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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