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왕룽의 대지' 봉필역 장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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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남자 연기자를 스타덤에 올려주는 캐릭터 중에 '터프 가이' 가 있다. 터프 가이 스타가 되려면 거칠고 강렬하면서 은근히 순진함이 우러나는 인상이어야 한다.

터프 가이의 표밭인 여성 팬들에게 가슴 설레임과 안쓰러운 마음을 동시에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최재성.이정재.정우성이 그랬다. 이제 장혁(23)이 그 터프가이 스타의 계보를 잇겠다고 나섰다.

어촌출신으로 바닷바람에 단련된 피부, 고교시절 마라톤과 기계체조로 다듬은 몸매, 강렬한 눈빛 등 터프 가이 스타의 3대 요소를 갖췄고 그위에 부드러운 미소로 마감재를 얹었다. 요즘 소녀들 사이에서 차태현과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남자 연기자로 뜬 것도 이해가 된다.

어딘지 비슷한 외모와 분위기 때문에 '제2의 정우성' 소리를 들어온 그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쉽게 기억될 수 있지 않느냐. " 고 대범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냥 '장혁' 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은 연기자로서 인지상정. 최근 출연중인 SBS 인기 드라마 '왕룽의 대지' (토.일 밤8시50분)는 그런 희망을 실현해 줄 기회일지 모른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봉필 역은 촌스런 꽃무늬 티셔츠 차림에 어색한 영어발음 '피-일(Feel)' 을 연발하는 건달이다.

비뚤게 자라 폭력조직에 휩쓸리는 아웃사이더 역이었던 '햇빛 속으로' 에서와는 퍽 대조적인 돈키호테형 캐릭터다. 애수어린 눈빛과 절제된 행동 대신 코믹한 표현을 해야한다. 장혁이란 연기자가 다양한 이미지를 표출할 수 있음을 보여줄 지표같은 역이다.

게다가 봉필은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무게를 더해가는 중역(重役)이다. 왕룽(박인환)의 후계자로 찬새미 마을의 땅을 이어받아 혁신적 농법으로 가계를 불리게 되며, 한 여자 화정(박시은)만을 열렬히 사모하는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봉필에 대한 장혁의 애착은 깊을 수 밖에 없다. "자기만의 소신을 갖고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무척 맘에 들어요. 저도 어리긴 하지만 소신파거든요. "

사실 장혁은 겹치기 출연 사절,가수로의 외도 거부 등으로 '소신' 을 보여준 바 있다. 3월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화산고' (김태균 감독)출연을 위해 K2TV 미니시리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캐스팅 섭외를 고사했고, 인기 탤런트들에게 흔한 유혹인 음반 제작 제의도 거절한 것. 그 소신이 연기의 질을 높이는데 바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게 팬들의 마음일 것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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