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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국가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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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역사적으로 목재는 쓸모가 다양한 유용한 자원이었다. 건축.난방.취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원료였을 뿐만 아니라 군사.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었다.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한 무역이나 전쟁, 탐험, 식민지 확보와 같은 활동 모두가 선박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은 곧바로 그 나라의 국력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큰 나무들이 자라는 숲을 보유한 나라는 군사적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이처럼 조선(造船)용 목재를 생산할 수 있는 숲을 특별히 보호하고 관리했던 이유도 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국내의 목재 자원이 고갈된 경우엔 숲이 많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해서라도 조선용재를 확보하려 했다. 이처럼 숲은 국가경쟁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한편 숲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계속 주장하기에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비(非)목재화돼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은 더 이상 목재를 이용해 상선이나 전함을 건조하지 않는다. 따라서 목재가 지녔던 전략적 중요성도 거의 사라졌다. 건물을 지을 때도 시멘트.강철.유리.알루미늄.플라스틱 등 비목재 원자재를 더 많이 사용하며, 난방과 취사도 땔감 나무보다는 전기나 화석연료를 쓰고 있는 오늘날 목재의 경제적 가치도 과거에 비해 크게 퇴색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숲은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국가경쟁력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건재하고 있다.

목재 자원의 공급원으로서 숲이 지니는 가치는 크게 쇠퇴했지만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측면에서 숲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과 소비활동이 집약적으로 이뤄지며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에서 숲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숲은 삶의 질을 가장 잘 대변하는 척도 중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고도로 산업화한 경제구조 아래에서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것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하나는 고급 인적 자원이다. 그러나 고급 인력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지리적 이동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내건 국외건 자신의 취향이나 환경적 조건에 따라 쉽게 직장이나 거주지를 옮긴다. 이동성이 높은 이들을 유인하고 경쟁력 향상을 위한 활동에 투입하기 위해선 단순히 높은 급료나 금전적인 유인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이 야외활동이나 문화적 체험과 같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활동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곳에서 꾸준히 근무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내외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도시지역 내에 많은 숲이 필요하다. 해외에 공장이나 기업을 설립하려는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각종 세제상의 혜택이 제공된다 해도 투자하려는 도시의 공기나 강물이 오염돼 있고 휴식이나 야외활동 공간이 부족하다면 우수한 인재를 데려오기 힘들며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지 못한 기업은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쟁력은 이제 단순히 기업 자체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이 위치해 있는 도시의 자연환경이나 문화활동의 기회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길 원한다면 정부건 기업이건 세제상의 인센티브나 산업인프라 구축 같은 곳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도시지역에 공원을 만들고 녹지를 늘리는 데도 동등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원과 녹지는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과 도시미관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탁광일 생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