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기이식도 '준법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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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기이식법이 발효되자마자 장기이식을 주선해온 민간단체와 병원들이 '준법 거부' 를 선언하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골수이식 기관인 가톨릭대학 부속 골수이식은행은 어제 신설 국립 장기이식관리센터가 요청한 기증자 자료 이관을 거부했다.

또 대표적 민간운동단체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도 기증자와 수혜자를 직접 연결하는 활동방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든 장기이식을 국가가 관리토록 한 장기이식법의 핵심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국민이 느끼는 혼란도 문제지만, 당장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이같은 사태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본다. 우선 법의 내용이 장기이식의 국가관리라는 목표에만 집착해 국제관행조차 무시됐다.

골수나 각막은 장기(臟器)가 아니라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 인식이지만 우리는 그것들도 장기로 분류했다.

그 결과 법 시행과 동시에 골수이식은행이 반발하고, 장기이식관리센터가 보건복지부에 개정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의 과욕이 법의 신뢰성을 훼손한 셈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의 경우도 정부가 설득과 협조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동안 장기기증과 이식은 민간의 노력에 전적으로 의존해 확산돼 왔던 만큼 국가관리로 전환하는 데는 마찰이 예상됐다. 준비과정에서 충분한 협의를 통해 협조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새 법의 취지는 기증 장기를 공정하게 관리하고, 장기 매매를 근절하며, 장기기증을 더욱 활성화하자는 데 있다. 이는 민간단체의 활동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행과정에서 보완할 점도 많고 정부 감시도 필요하다. 민간단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 법을 송두리째 무시할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도 상호 협조를 통해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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