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병무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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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말이 공짜로 들어와도 기쁜 빛을 보이지 않고 아들이 그 말에서 떨어져 불구가 돼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 옛 중국 새옹(塞翁)의 이야기다.

대개 지금 행(幸)이라 할 것이 불행(不幸)의 씨가 되고 불행 또한 행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그가 헤아렸기 때문이다.

변방에 난리가 나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으로 끌려가지만 불구가 된 그 아들은 징집되지 않는다. '앞일은 알 수 없다' 는 뜻을 담은 이 고사는 한편으로 '군(軍)' 에 가는 것을 불행으로 여기는 풍조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음도 일러준다.

가까이는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이때는 사대부.양반을 제외하고 16세 이상의 양민이면 누구나 군에 가야 하는 국민개병(皆兵)제였다.

다만 소수의 정군(正軍)만 실제 복무를 하고 나머지 사람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해마다 나라에 포(布) 2필에 해당하는 재물을 바쳤다. 영조 이후로는 군포 2필을 1필로 하는 균역법을 써 이들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이런 저런 명목을 붙인 지방관들의 주구로 군포액은 갈수록 늘어났다. 도망하는 자가 생기면 애꿎은 가족.이웃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나중엔 어린애와 죽은 자까지 군적에 올려 포를 징수했다. "심하게는 강아지와 절구까지 군안에 올린다" 고 기록한 사람은 정다산(丁茶山)이다.

양민들은 군적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뭉칫돈을 싸들고 가 관원.아전에게 뇌물을 먹이고 군 면제가 보장되는 서원.향교의 교생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양반.사대부에게 일가를 던져 천한 묘지기가 되면서까지 그 그늘 아래서 군역을 면하려 했다. 관의 불법.비리가 거꾸로 백성들의 비리를 부르는 꼴이었다.

이런 비리의 숨바꼭질 속에 군정은 형편없이 흐트러지고 필경 망국으로까지 줄달음쳤음은 그 후의 역사가 보여주는 대로다.

물론 지금을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개병제 하에서 이리저리 비리로 '빠지는' 예외자가 많아선 안된다는 점 만은 그제나 이제나 같다.

사실 의무가 아니고선 일정기간 명령과 속박을 고통스럽게 감내해야 할 군대에 좋아서 갈 사람은 없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고 설령 복무하고 나온 사람도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거침없이 '희생' 이란 말을 쓰는 사람까지 있는데 그건 '2년여를 때우고 나와도' 무엇 하나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주로 특권.지도층들이 온갖 비리수단을 써서 병역을 빠져나가는 판이니 억울한 느낌에 누가 선선히 군대에 가려고 할까.

검찰이 사회지도층의 병무비리 수사를 본격화하겠다고 나섰는데 이번엔 정말 뿌리를 뽑을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총선을 앞두고 수사시점을 탓하는 여론도 있지만 공정한 병무행정을 세우기 위한 수사라면 딱히 그 시점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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