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여편 시 담은 시집 발간… 장애인 시인 권오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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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권오철(權吳澈.34.사진.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씨는 선천적으로 근육이 쇠퇴해가는 난치병인 근이양증(디스트로피)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거동이 어려워 34년 세월의 대부분을 방안에서 갇혀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는 그늘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넘친다.

자신이 시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는 1991년 첫 시집 '어린 왕자를 잊은 이를 위한 시' 를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모두 4편의 시집을 펴냈다.

합병증까지 겹쳐 신체 왼쪽부분이 모두 마비된 그는 엎드린채 오른손만으로 컴퓨터로 시를 쓴다.

홀로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를 작동할 수 없어 전기 스위치로 연결해 사용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한달이 고작인 그의 정규학력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뒤늦게 독학으로 한글과 컴퓨터를 깨우쳤기에 가능했다.

權씨는 TV와 동화책을 통해 17세 때 한글을 익힌 뒤 20대초반에 초.중.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난 90년 서울의 한 장애인 근로시설에서 컴퓨터를 처음으로 접한 뒤 워드 프로세스 등을 혼자서 익혔다.

이제는 시도 컴퓨터로 쓰고 인터넷 공간도 자유자재로 넘나들 정도의 전문가가 됐다.

權씨는 이달안으로 '권오철의 삶의 이야기' 란 개인 홈페이지도 개설할 계획이다.

그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8세 때부터 틈나는 대로 바깥 세상의 풍경을 시형태로 일기장에 적기 시작하면서부터.

TV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도 시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무심코 자신의 병명을 알려준 의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보낸 한편의 시가 장애인 모임의 회지에 실리자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 이후 시 쓰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현재까지 모두 4백여편의 시를 담은 네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장애인은 감수성이 예민한 데다 마음이 순수해 노력만 하면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장애를 딛고 시인으로 거듭난 權씨가 장애인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다.

강릉〓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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