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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APEC 경제 통합 적극 협력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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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14~15일 이 기구의 창립 20주년에 맞춰 개최된다. APEC은 분명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강력한 조직이다. 20년 동안 이 기구는 세계 경제와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됐으며 앞으로 그 역할은 한층 더 늘어날 것이다.

APEC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반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989년 11월 호주 수도 캔버라에서 열린 첫 APEC 장관회의 결정문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엔 APEC이 회원국의 정치•사회적 시스템의 차이와 경제 수준의 격차를 인정하고, 열린 대화와 합의를 신봉하며, 회원국 모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원칙에 기초하여 협력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같은 원칙을 통해 APEC은 역내 투자협력을 강화하고 통상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기구의 능력과 유연성은 국제 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 증명됐다. 물론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각국이 정한 우선 순위와 가능성에 맞게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파트너 국가들의 경험을 비교해보는 것은 언제나 유익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APEC은 회원국간에 위기 대처 경험을 교환할 수 있는 훌륭한 장이다.

APEC의 의제는 경제 문제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회원국들은 안보와 복지 등의 분야에서 제기되는 현대적 도전에 대한 공동의 해답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기구는 그 동안 다극적 외교의 효용성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기구 활동의 기본이 바로 공통의 문제를 힘을 합쳐 그리고 동등한 위치에서 해결해 간다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APEC 발전을 위한 열쇠도 바로 이 원칙에 있다.

1998년 기구에 가입한 러시아는 그 사이 다른 회원국들과의 협력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러시아는 항상 민감한 사안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다른 국제기구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러시아는 APEC의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되려고 한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이 아태지역 통합 과정에 깊숙이 편입되길 바란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뜻은 아니다. 우리에겐 파트너들에게 줄 뭔가가 있다. 석유, 가스를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과 천연자원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경쟁력이 있는 러시아의 '자산'은 과학기술과 지적 잠재력이다.

우리는 아태지역의 다양하고 호혜적인 협력에 참가할 준비가 돼 있다. 그 대표적 예가 2012년 러시아 극동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의다. 이는 영예스럽지만 동시에 아주 막중하고 중요한 임무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를 알차고 훌륭하게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올해 APEC 활동은 '지역 협력의 지속적 발전과 강화'라는 구호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는 국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폭넓은 대책이 논의될 것이다. 당연히 보다 균형 잡히고 공정한 국제금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이 협의될 것이다. 이러한 개혁이 없이는 세계 경제는 또 다른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세계 각국이 경제 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이번 APEC 회의에서는 위기 이후 아태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최적의 모델도 검토될 것이다. 새로운 단계의 국제 경제 발전을 위한 준비는 미리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APEC 정상들과 마찬가지겠지만 경제발전은 지속적일 뿐만 아니라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국가 전체와 모든 경제 부문이 골고루 발전해야 하고 전 국민이 그 성과를 누려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노인과 어린이, 실업자,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들에겐 각별한 배려가 기울여져야 한다.

현재 APEC에서 논의 중인 '공동의 사회적 책임'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경제 혼란기에 국가적 지원을 받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에게 이 개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제 무역에서 부상하고 있는 보호주의적 성향에 대해 그러한 조치가 구체적 목적을 위해 철저히 한정된 기간에만 적용돼야 한다는 APEC의 입장에 동의한다. 개별 국가들이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경쟁력이 약한 기업에 온실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과도한 보호주의는 자유 경쟁의 원칙에 어긋나며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에도 이득보단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러시아는 앞으로도 역내 경제 통합 과정에 참여하면서 APEC 활동에도 적극 협조할 것이다. 경제관련 법률 개선과 경제 구조 개혁, 부패 척결과 투명성 확보, 중소기업 육성, 민관 협력 활성화 등의 분야에서 회원국들과 공조를 취할 것이다. 또한 아태 지역의 식량, 에너지, 교통, 환경, 정보 분야 안보 강화를 위한 협력도 강화할 것이다. 국제 테러리즘과 조직 범죄, 마약, 인신매매, 해적활동 등에 대한 국제 공조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20주년을 맞은 APEC이 아태지역의 조화롭고 안정적인 발전과 지역민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