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필요성 대법원서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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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1990~92년 신도 6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생교 신도 라모(63)씨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형폐지론에 배치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단지 영생교를 이탈하거나 교주를 비방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교인이었던 피해자들을 죄의식 없이 살해하는 등 인명을 경시하는 반사회적 태도를 보여줬다"며 "범행 계획이 치밀하고, 수법이 잔혹한 만큼 사형을 선고한 원심은 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형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과 형벌의 목적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따라서 사형 선고를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으면 허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극히 반인륜적인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로 볼 수 없어 사형 선고가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한 헌법(제10조)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사형 선고는 최대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밝혔다.

재판부는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것"이라며 "사형을 선고할 때는 가족관계.범행 동기 등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사형이 확정돼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모두 59명으로 늘어났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모두 902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인 97년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뤄진 이후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현재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현행 사형제를 없애는 대신 종신형제의 도입을 주요 골자로 한 특별 법안을 준비 중이다. 종신형제는 무기징역과 달리 수형기간 10년이 지나도 가석방될 수 없다.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특히 최근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66.3%나 됐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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