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돌아간 '나무 박사' 김장수 전 고려대 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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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무와 더불어 사셨던 선생님이 '나무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남기심에 따라 수목장(樹木葬) 을 치릅니다…."

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고려대 농업연습림. 유가족.제자 등 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6일 타계한 김장수(金樟洙.85.사진) 전 고려대 농대 학장의 장례식이 열렸다.

변우혁(56.환경생태공학부)고려대 교수의 추모사 낭독이 끝난 뒤 화장한 고인의 유골은 생전에 아끼던 50년생 참나무 밑 땅속에 안장됐다. 봉분이나 비석 등 일반 묘에서 볼 수 있는 시설은 전혀 설치되지 않았다. 다만 참나무에 고인의 묘임을 나타내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명패가 걸렸다.

변 교수는 "고인이 평소 '죽어서도 나무와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자주 해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다"며 "대학 측에서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 고 김장수 전 고려대 농대 학장의 수목장이 끝난 뒤 장남 병덕씨가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고 쓴 명패를 달고 있다. [산림청 제공]

수목장은 스위스.독일.뉴질랜드.일본.영국 등 선진국에서 몇년 전부터 각광받고 있는 자연친화적 장례의 한 형태다. 시신을 화장해 유골을 흙에 묻어 땅을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고인이 좋아하는 나무나 꽃을 심는 것이다. 울타리나 비석.유골함 등 인공물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이 수목과 함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 영생토록 한다는 것이다. 산림 훼손이 없는 데다 벌초 등 무덤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최근 사찰이 운영하는 수목장 전용 묘지 및 수목장을 원하는 사람들의 동호인 모임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1919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고인은 수원농림전문학교(현 서울대 농대)와 일본 교토(京都)대를 졸업한 뒤 1953년 고려대에 임학과를 창설, 85년 고려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한국조경학회장.국립공원협회장.한국임정연구회장 등을 지냈으며, '임학개론''임업경영경제학' 등 20여권의 책을 냈다.

산림청 관계자는 "고인의 높은 뜻은 매장문화로 인해 금수강산이 묘지로 변해가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의 분묘 수는 약 2000만기(基)로 전체 면적이 서울시 면적의 1.6배인 968㎢(2억9333만평)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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