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고위급회담 합의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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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 상반기에 워싱턴에서 북.미 고위급(차관급이상)회담을 열기로 28일 베를린에서 합의한 덕분이다.

이는 지난해 9월 북한 '미사일 모라토리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에 이은 양국 관계 진전의 돌파구다.

김계관(金桂寬.외무성副相)과 찰스 카트먼(한반도평화회담 특사)의 베를린 합의는 "관계 개선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 는 양측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때문이란 것이 우리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이번 베를린회담에서 고위급 대화 창구를 마련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식량 지원과 경제제재 추가 해제를 먼저 약속해달라는 북한측의 요구 때문이다.

미국은 결국 식량 원조를 '이면합의' 방식으로 보장하면서 북한측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클린턴 행정부로선 올 11월 대통령선거에서 고위급 회담 카드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관계는 이제 워싱턴 고위급 회담의 구체적인 일정.의제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회담의 북측 대표로는 강석주(姜錫柱)외무성 제1부상(수석 차관격), 미국측에선 윌리엄 페리 조정관이나 웬디 셔먼 국무부 자문관이 유력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페리 조정관은 지난해 5월 방북 때 강석주의 미국 방문을 초청한 당사자로서 회담 초기단계에만 나서고 셔먼 자문관이 협상을 주도할 것" 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북한이 고위급 회담에 상당부분 성의를 보일 것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대체적 전망이다.

북한은 베를린회담 직후인 29일 "6.25 때 북한에서 실종된 미군으로 보이는 유해 4백구를 조건없이 미국에 인계하겠다" 고 밝혔다.

' 지난해 북한과 일본간 대사급 수교 협상이 올 3~4월께 열릴 예정이어서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

그렇지만 워싱턴 고위급 회담의 테이블이 실제 마련되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놓여 있다.

지난해 한.미.일 3국 합의로 작성된 '페리 권고안' (대량 살상무기 해체 등)을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30일 평양방송은 "미.일이 군사력 등으로 우리를 고립.압살할 수 없게 되자 대화같은 유화전략으로 어째보려는 데 대해 경각성을 갖고 대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자주권 문제' 라고 우기던 핵.미사일 문제에는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이지만 미국이 들고나올 북한의 테러.마약.인권 문제에는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접근 속도와 포용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온 미국 의회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변수다.

이철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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