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기유학 자유화 이후의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중학교 이상 졸업자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돼온 해외유학이 이르면 3월부터 전면 자유화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든 초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일선 학교에서는 새 학기를 앞두고 벌써 미국 등지로 유학을 떠나거나 준비를 서두르는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조기유학 완전자유화를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본다. 국제화가 보편적 시대조류고 과거의 규제 속에서도 편법 조기유학이 성행했던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때늦은 느낌마저 든다.

유학 자유화는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국제적 인재 양성과 국가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기유학 자유화는 단순히 음성적으로 이뤄져온 유학을 양성화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우리 중등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등교육은 이미 25년 이상 평준화를 기본토대로 해왔다. 그 결과 학생들의 선택권은 원천봉쇄되고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학력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안으로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가 도입됐으나 그 혜택은 성적우수자에 제한됐고, 그나마 최근에는 대학입시와 관련해 파행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조기유학 자유화 조치는 그동안 음성적인 유학생 수를 감안하면 교육선택권의 폭을 한층 확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그것 역시 특정계층에 한정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외국유학은 어느 정도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는 학생들에게 국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들에게 예외가 인정됐지만 유학자유화로 돈 있는 집안의 자식들에게도 학교선택권이 주어짐으로써 교육기회의 불균형에 대한 일반의 불만은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중등교육체제를 개선하는 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안에서는 묶어놓고 밖에서만 풀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확대해줘야 한다.

그 방안은 일선학교의 자율화.다양화.특성화로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평준화의 기본틀은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을 대폭 자율화함으로써 질이나 유형에서 차별화된 교육을 할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 의 시행이 한가지 방안이다.

또 실업고의 경우 시대변화와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특성화해야 한다.

이런 방안은 대학입학제도를 중등교육의 개편에 맞춰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작업과 병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도피성 조기유학도 줄이고 국내 교육의 체질개선도 원활해질 것이다. 유학자유화가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