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영남 14석 줄면…"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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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순항하는 듯했던 국회 선거구획정위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26일 재심의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획정위는 전날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을 9만~35만명으로 확정했다.

영남에서 최대 14석이나 감소하는 한나라당은 해당 의원들의 반발로 밤새 홍역을 치러야했다.

중진들마저 "공천 교통정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 며 "획정위를 탈퇴하라" 고 요구했다.

결국 李총재는 당무회의에서 "획정위 안은 표의 등가성 등에 문제가 있다" 고 지적하고 재심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李총재에게는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획정위는 李총재의 요구로 탄생했다.

李총재는 심지어 "획정위가 의원정수를 축소키로 결정하면 전적으로 수용할 것" 이라고 거듭 다짐한 바 있다.

그래서 李총재는 재심의를 요구하면서 "의원정수 축소에는 이의가 없다" 는 전제를 달았다.

李총재가 강조한 부분은 "9만5천~35만명 기준은 위헌" 이라는 논리다.

이를 요약하면 두 가지다.

첫째는 도시 혹은 농어촌 각 선거구 사이에 3대1 이상 편차가 나면 평등선거 위반이라는 95년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99년 12월 말 기준으로 대구중구는 9만5천5백명, 대구동구는 34만명으로 9만5천~35만명 기준에 따를 경우 3대1 이상의 편차가 난다는 것.

두번째도 95년 헌재 결정을 바탕으로 한다.

전국 인구를 선거구 수로 나눈 수치가 10분의6 범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 2백53개 선거구를 10%(25개) 줄이면 2백28개. 전체인구인 4천7백33만명을 2백28개 선거구 수로 나누면 20만8천여표가 되고 '60% 룰' 을 적용하면 8만3천4백~33만3천6백명이 돼야 위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획정위의 한나라당 대표인 변정일(邊精一)의원은 "인구 상하한선을 재심의하지 않을 경우 불참하겠다" 는 뜻을 밝혔다.

이 바람에 획정위는 이날 오전 열리자마자 20분 만에 정회했다.

당초 구체적인 선거구 조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이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획정위가 겉돌자 3당 총무들이 두차례의 회담을 벌였지만 민주당과 자민련은 고개를 저었다.

"총무회담 협의사항이 아니니 획정위에서 얘기하라" 고 했다.

한흥수(韓興壽)획정위원장은 "재심의는 곤란하다" 고 잘랐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집으려면 의결정족수(7명 중 5명)를 충족해야 한다고 버텼다.

한나라당 논리에 대해서는 "또다른 헌재 결정도 많다" 며 판례집을 뒤적였다.

그러면서 비난도 내놨다.

"한나라당이 표결에는 참여하고 뒤늦게 재심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 라는 것이다.

최상연.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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