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야마다기미오-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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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실리 챙기는 白36수에 李9단 슬슬 火氣

제2보(19~36)〓백△로 견제하자 19로 씌워간다. 확실히 요즘 바둑은 변했다.

공간을 넘나드는 파격의 힘이랄까, 피카소의 그림같은 추상의 힘이랄까, 그런 것들이 판을 휩쓰는 통에 실리바둑이든 세력바둑이든 대세감각이 뒤지면 한순간에 끝장이다.

19는 이창호9단이 후회한 수. '참고도1' 흑1, 3을 아낌없이 선수하고 5로 씌워야 했다.

프로는 본능적으로 굳혀주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여운을 남긴 채 그냥 19로 씌운 것인데 결과적으론 손해가 컸다.

24로 기분좋게 때려낸 야마다7단은 26에 사납게 붙여 기세를 올린다. 李9단은 그러나 동요하지 않는다. 27로 대시했다가 31에서 곧 정위치로 돌아온다.

31로 '참고도2' 흑1처럼 혼내주러 갔다가는 오히려 12까지 금방 살려주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적어도 바둑판 위에서 만큼은 분노는 어리석은 것. 빚을 당장 갚아주려고 서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된다. 모름지기 참선의 자세로 판의 변화 그 자체에만 몰두해야 한다.

하지만 곤마를 방치하고 또다시 실리를 챙겨버린 야마다의 36이 돌부처 이창호의 가슴에도 은은한 화기(火氣)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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