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법, 이념 앞에서 길을 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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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월 국회 로텐더홀을 불법 점거한 혐의 로 약식 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재판. 서울남부지법 마은혁 판사는 지난 5일 신모(40)씨 등 민노당 당직자 12명에 대해 전원 공소 기각했다. “민주당 쪽은 빼고 민노당 당직자만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같은 법원의 정계선 판사는 지난 7월 같은 혐의로 약식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 박모씨에게 7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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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는 현상은 지난해 ‘촛불 집회’ 재판 이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시 박재영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판사는 집시법상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이에 일부 판사는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을 헌재 결정 이후로 연기했다. 반면 같은 법원 항소4부(최정열 부장판사)는 “현행법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게 타당하다”며 관련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판사들의 시각 차는 지난 9월 헌재가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다시 나타났다. 해당 피고인에게 유죄를 내린 재판부는 “헌재가 법 개정 시까지 현행법을 계속 적용하라고 한 취지를 살려 유죄로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무죄를 내린 재판부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선언된 법률조항은 더 이상 처벌법규로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3심을 거치며 정리될 것”이라는 게 대법원 측 설명이지만 피고인들은 재판부의 성향이 어떤지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동국대 김상겸(법학) 교수는 “자의적 법 적용을 막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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