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연2단 흥창배 결승진출로 세계무대 첫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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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사이버 기원의 마스코트였던 조혜연양이 드디어 세계무대의 신데렐라가 됐다. PC통신 천리안의 대국장에서 조혜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깜찍하고 바둑도 강한 초등학생 소녀는 무려 3년 동안 수많은 아저씨들과 온라인으로 대국하며 실력을 키웠다. 아마강자 임동균7단과 2백판 이상을 두었고 김수장9단도 기꺼이 대국을 해줬다.

이 '천리안의 마스코트' 가 김원6단의 도장을 거쳐 본격적으로 프로가 된 것은 97년. 그러고는 감감했는데 지난주 벌어진 흥창배에서 조혜연2단이 대이변을 연출하며 결승까지 치고 올라갔다.

가장 놀란 쪽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그쪽 신문들은 불과 15세의 한국소녀가 펑윈(豊雲)9단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강자 3명을 연파하고 흥창배세계여자선수권대회 결승전에 올라 루이나이웨이9단과 당당히 맞서게 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조혜연은 지난해 삼성화재배 예선에서 백을 잡고 루이9단을 불계로 격파한 적이 있다. 세련미가 부족해 평균 성적은 떨어지지만 이처럼 가끔 가다가 큰 일을 낸다.

남성기사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지은2단(17)과 함께 한국여자바둑을 이끌 쌍두마차로 꼽히는 것도 바로 이런 돌파력 때문이다.

"루이9단에게 실력은 안되지만요, 한번 해봐야죠. " 18일 한국기원에서 만난 조혜연양은 또렷한 어조로 다음달 열릴 결승전에 대한 소감을 털어놓는다. 루이9단보다 약하다는 걸 느끼느냐고 묻자 "훨씬 세요. 두는 것 보면 다 알아요" 한다.

세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컸다. 97년 프로가 되었을 때는 공주가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대회만 열리면 누구나 이길 것 같았다.

그러나 프로세계의 벽은 높고도 높아 첫해 결과는 9승16패. 참담한 전적이었다. 98년에도 13승23패.

"아마추어 시절, 힘이 강하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저도 스스로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믿었지요. "

유창혁9단의 두텁고 공격적인 기풍이 좋아 그의 바둑을 닮고 싶었으나 헛수고였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승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차라리 본래의 스타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오히려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 이리하여 99년엔 23승23패. 처음 승률 5할을 마크했다.

이중 남자기사에게도 10승을 거뒀다.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임을 깨닫고 좌절하다가 용기를 내어 바둑을 다시 돌아보자 뭔가가 보였다.

이제 15세. 충암중 2학년인 조2단은 3년 안에 루이9단을 꺾고 세계무대를 정복하는 것이 우선 목표다.

그러나 바둑말고 영어와 일본어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털어놓는다. 언젠가는 서양에 바둑보급하는 일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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