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지리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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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지하(1941~ ) '지리산' 부분

눈쌓인 산을 보면/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숲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히 흘러/울부짖는 것이여

깃발이여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한 자루의 녹슨 낫과 울며 껴안던

그 오랜 가난과

돌아오마던 덧없는 약속 남기고

가버린 것들이여

지금도 내 가슴과 울부짖는 것들이여

(후략)



지리산 앉고 섬진강 긴 소리하는 게 아니라 지리산은 민중의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산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산, 근대사의 피로 얼룩진 산이다. 봄눈 녹으면 어린 곰취싹을 캐어 죽을 쒀먹고 파르티잔은 그 죽그릇(반합)을 두들기며 이런 노래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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