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1941~ ) '지리산' 부분
눈쌓인 산을 보면/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숲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히 흘러/울부짖는 것이여
깃발이여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한 자루의 녹슨 낫과 울며 껴안던
그 오랜 가난과
돌아오마던 덧없는 약속 남기고
가버린 것들이여
지금도 내 가슴과 울부짖는 것들이여
(후략)
지리산 앉고 섬진강 긴 소리하는 게 아니라 지리산은 민중의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산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산, 근대사의 피로 얼룩진 산이다. 봄눈 녹으면 어린 곰취싹을 캐어 죽을 쒀먹고 파르티잔은 그 죽그릇(반합)을 두들기며 이런 노래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송수권<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