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알면 '스타크래프트'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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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스타크래프트' 와 '바둑' .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기호를 대표하는 게임이다.

언뜻 물과 기름처럼 들리는 두 게임이지만 스타크래프트에도 일가견이 있는 케이블 바둑TV의 안성문 PD는 "바둑과 스타크래프트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여서 둘을 접목할 수 있는 특집프로를 기획중" 이라고 말했다. 둘 사이의 공통점을 따져본다.

◇ 공간은 우주다〓바둑이든 스타크든 공간 사용 범위는 거의 무한정이다. 바둑은 19×19의 점들 모두에 착석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기존 경기를 다시 보여주는 복기를 제외하면 바둑이 처음 생겨났다는 요(堯).순(舜)시대 이래 같은 경기가 되풀이 된 적이 없다는게 정설. 스타크도 마찬가지다. '맵(map)' 으로 불리는 싸움판이 일단 설정되면 어디에든 기지를 건설할 수 있고 어디로든 부대를 보낼 수 있다. 같은 게임이 반복될 리가 없다. 그만큼 변수가 많은 가변적 공간에서 다양한 싸움이 전개된다.

◇ 시작이 반이다〓그렇다고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바둑 10조' 에 '권여(權與)' 란 말이 있다. '저울의 추' 와 '수레의 밑판' 이란 뜻으로 바둑판의 네 귀에 돌을 놓는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스타크에서 전투의 기반이 되는 미네랄 기지는 바둑의 네 귀에 해당한다. 게다가 시작 단계에서 신속하게 굳건한 기지를 건설하지 않으면 초반 러시(기습공격)를 당해 싸우지도 못하고 전멸하기 십상이다.

◇ 정석이 존재한다〓수천년 동안 겪었던 시행착오와 당대에 유행하는 전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게 바둑의 정석. 한마디로 검증을 거친 전법이다. 스타크에도 특유의 공략법이 있다. 오랜 전술회의를 거듭한 끝에 프로게이머들이 각종 경기에서 첫선을 보인다. 케이블 채널인 투니버스 등을 통해 일단 게임이 중계되면 이용자들 사이에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서점에 프로 기사들이 집필한 바둑의 정.포석집이 널렸듯이 스타크도 프로게이머가 쓴 각종 공략집이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 미학적 포진〓미학이 힘으로 연결된다. 일본의 고바야시 9단은 "바둑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미학적 구도를 깨뜨릴 수는 없다." 고 했다. 스타크의 기지 건설에도 미학적 관점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테란 종족을 예로 들자. 벙커와 배렉스(전투병 생산 공장 겸 수비벽), 서플라이 디팟(더 많은 유니트 생산을 가능케하는 건물) 등을 어떤 구도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투력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바둑을 조금만 안다면 포석만 봐도 상대방의 내공을 가름하는 법. 스타크도 기지를 꾸린 형태만봐도 상대방의 실력과 공격형인지 수비형인지 스타일을 알 수 있다.

◇ 전술적 유사성〓 '사귀생(四歸生)통어복(通魚腹)이면 필승(必勝)이다' (네귀를 점하고 중앙을 통하면 반드시 이긴다). 바둑의 불문률이다. 주위의 미네랄 지역을 점한 후 멀티 기지를 세우고 중앙으로 진출하는 스타크의 기본 전술과도 통한다. '대마불사' 도 마찬가지. 스타크에서는 인해전술이 통한다.

◇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일단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랐던 신선놀음이 바로 바둑. 스타크를 시작하면 밤을 새우는 일은 예사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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