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4국' 아무도 예상 못한 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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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4국
[제5보 (77~84)]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사건은 점심시간 직후에 일어났다. 모두 이세돌9단의 거친 공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바둑판 위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인터넷 생중계를 맡은 프로들은 백이 실리에서 앞섰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건 소용없고 어차피 좌변에 뛰어든 백이 죽느냐, 사느냐가 승부라고 말했다. 점심을 끝낸 이창호9단도 긴장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이세돌이 돌을 던져버린 것이다.

84수. 단명국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사건의 추이를 더듬어 보자. 하변 백?에 흑은 77로 물러서야 했고 이 부근에서 덤 가까운 손실을 봤다. 하나 79, 81로 좌변을 최대한 넓히자 백의 대응이 어렵다.

형세가 괜찮은 만큼 멀찍이 삭감해야 옳을까. 하지만 대장고를 거친 이창호는 82, 84로 최대한 깊숙이 파고들었다. 검토실은 "역시 그곳인가" 하고 탄성을 터뜨리면서 한편으로 분노한 이세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사나운 이세돌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공격의 방향은 '참고도' 흑1일까, A일까. 대마불사라는 격언이 있지만 이세돌은 이미 이창호의 대마를 잡아본 경험이 있다.

여기서 점심시간. 이창호는 일행과 같이 떠났고 이세돌은 홀로 남았다. 그리고 이창호가 돌아와 착석하자 이세돌은 곧 돌을 거뒀다. 이창호는 나중에 "던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도저히 안 된다. 그래서 던졌다"고 말했다.신선하고 파격적이면서도 불가사의한 투석, 이것으로 스코어는 2대 2가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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