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벽촌서 관광 명소된 제주 ‘아홉굿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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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주제로 한 제주 아홉굿 마을 공원 전경. 관광객들 쉬라고 800여 개의 의자를 설치했다. 또 높이가 20m나 되는 거대한 의자 조형물도 있다. [프리랜서 김영하]

벽촌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로 탈바꿈한 농촌 마을이 있다. 주민이 똘똘 뭉쳐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특산물을 개발하고, 톡톡 튀는 마케팅을 한 덕이다. 일종의 마을 단위 ‘창업 성공기’다. 이들 지역엔 농촌진흥청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경제적 지원도 더해졌다. 그들의 성공 이야기, 그리고 농업·농촌 발전을 뒷받침하는 농진청의 농업기술 개발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지난달 27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아홉굿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 마을회관 앞 공원에 관광버스들이 도착했다. 연수차 제주에 온 경기도의 식품제조업체 이든네이처 직원 100여 명이 차에서 내렸다.

누군가 공원의 의자를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의자에 새겨진 글귀 때문이었다. ‘엉덩이의 본능’ ‘앉으面(면) 편하里(리)’. 이런 재미있는 이름이 마을 구석구석 1000개의 의자마다 붙어있다. 김정희(40·여·경기도 수원시 영화동)씨는 “마을이 재미있고 아름답고 편안한 느낌”이라며 “가족과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제주 서쪽 끝자락의 낙천리는 제주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던 곳이다. 주민들이 “제주 사람 100명 중 한 명이나 우리 마을을 알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제주의 여느 마을처럼 바다와 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장으로 쓸 너른 초지가 있는 곳도 아닌, 그저 그런 산골. 보리·조·밭벼를 키우며 근근이 살아가던 동네였다. 주민들은 하나 둘 고향을 등졌고, 2000년대 초에는 160여 명만 남은 초라한 마을이 됐다. 그러던 마을이 이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변신은 2003년 시작됐다. 박유미(31) 마을 사무장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찾아오는 마을로 만들자’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김만용(53) 이장을 중심으로 변신 계획을 짰다. 제주도농업기술원과 관광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마을 이름부터 옛 지명인 ‘아홉굿’으로 바꿨다. 아홉굿은 300여 년 전 대장간 풀무틀을 만들던 9개의 굿(구덩이의 사투리)에 물이 들어차 연못이 만들어진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름에 걸맞게 아홉개의 ‘굿(good)’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풀무·보리음식만들기·천연염색·전통놀이 등이다. 마을꾸미기에 필요한 돈은 농촌진흥청의 테마마을 육성 지원금 2억원과 제주도의 사업비 지원 등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주도 초등·유치원생들이나 소문을 듣고 현장학습을 오는 정도였다. 관광객을 붙잡으려면 전국의 체험마을들과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2007년 주민들은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묘수찾기에 골몰했다.


‘편안함’을 마을 이미지로 삼고, 곳곳에 의자 1000개를 만들어 두기로 했다. 지난해 의자 설치를 끝내고 올 초에는 대형 포털을 통해 1000개 의자 하나하나의 이름을 공모했다. 공모를 통해 아홉굿 마을의 존재를 알리는 ‘온라인 마케팅’을 한 것이다.

마케팅이 적중했음일까.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2004년 3600명 정도이던 방문객이 올 들어 10월 15일까지 1만 명을 넘었다. 최근에는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 올레 코스에 마을이 포함되면서 관광객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2004년 1680만원에 불과했던 관광·특산물판매 소득도 지난해 약 1억5000만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안에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전통 식당을 낼 계획이어서 소득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아홉굿 마을은 주민 스스로 새로운 복지 농촌을 만들고, 이를 농진청이 지원하는 ‘푸른 농촌 희망찾기’ 운동의 모델”이라며 “아홉굿 마을처럼 자립하려는 곳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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