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29) 경제비서관의 죽음

이석표(李奭杓.작고)대통령 경제비서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발사 사고가 난 국산 벌컨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포(砲)에 바짝 붙어 몸을 꾸부린채 포 중간에 걸려 있는 벌컨탄을 꺼내는 포병(砲兵)의 동작을 주의깊게 지켜봤다. 나는 발사 시험에 실패한 사실이 마음에 걸려 李비서관의 행동에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악'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포병이 벌컨탄을 꺼내려는 순간 과열(過熱)된 벌컨탄이 순식간에 터지면서 탄약 파편이 몽땅 李비서관의 가슴에 박힌 것이었다. 그는 가슴을 부둥켜 안은채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붉은 피가 그의 양복을 흥건히 적셨다. 얼굴은 고통에 못이겨 완전히 일그러졌다.

벌컨포 시험장은 글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곁에 있던 군인들이 급히 李비서관을 짚차에 싣고 서울대학 병원으로 갔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만약 국산 벌컨포 시험이 성공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李비서관을 어떻게든 살려 내라" 고 병원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수술을 받고 잠시 회복하는듯 하더니 입원한지 열흘만에 끝내 숨지고 말았다.나는 자꾸만 그의 죽음이 내 탓으로 느껴져 한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작업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됐다.

그의 사망후, 청와대.국방부.국방과학연구소(ADD)는 완전히 혼연일체가 됐다. 내가 부장으로 있던 ADD 탄약개발부 연구원들도 국산 벌컨포의 문제점을 기어코 발견해 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 것은 작업 착수 6개월만인 1977년 12월 말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맹선재(孟琁在.68.한양대 명예교수)재료시험실장이 국산 벌컨탄의 뇌관(雷管) 재료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오린社' 가 국산 벌컨탄 제조회사인 풍산금속에 제공한 11센트 짜리 벌컨탄 뇌관 재료가 불량품임을 밝혀냈다. 이에 반해 7센트 짜리 미국제 벌컨탄의 뇌관 재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점도 입증했다. 미국제와 국산 벌컨탄의 뇌관 재료를 꼼꼼히 비교.실험해 얻어낸 결론이었다.

또 풍산금속에서 국산 벌컨탄의 성능시험을 반복해온 ADD 탄약개발부 소광섭(蘇光燮.55.서울대 물리교육과 교수)박사팀은 벌컨탄의 추진제(推進劑)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다.

추진제는 벌컨탄을 일정한 압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국산 벌컨탄에 쓰인 추진제는 벌컨탄에 갑자기 센 압력을 주었다. 따라서 발사 도중 탄약이 포 내부에 걸리게 하는 등 발사 사고를 유발시킨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작업 초기만 하더라도 우리 연구진은 설마 미국에서 기술과 장비.재료 일체를 들여 와 만든 국산 벌컨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벌컨포의 내부 정밀도가 미국제 벌컨포 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벌컨포 쪽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문제는 벌컨탄쪽에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만약 이 사실이 미국측에 알려질 경우 어떤 형태로든 압력이 들어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 미국측에 제시하기 위해 연구진들과 함께 은밀하게 데이터 분석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은 풍산금속에서 했다. 혹시 비밀이 새 나갈 것을 염려해 풍산금속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저녁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했다. 수없이 많은 시험을 해 봐도 결론은 같았다. 국산 벌컨탄의 뇌관과 추진제가 바로 범인(?)이었다.

나는 최종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김성진(金聖鎭.69.전 과기처장관)ADD 부소장을 찾아갔다. 나에게 벌컨포 문제를 떠 맡긴 장본인이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무척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