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서방에 '화해 손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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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동지역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주도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시리아간의 평화협상이 진행되면서 반미노선을 유지했던 아랍국들이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란과 리비아.레바논 등은 유럽과의 관계개선을 추진 중이며, 이란과 이라크는 전쟁으로 인한 반목관계를 청산했다.

중동국가들이 과거와 달리 개별적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아랍민족주의가 해체되는 게 아니냐고 분석하고 있다.

◇ 이란〓대서방 외교에 가장 적극적이다. 마호메드 하타미 대통령은 지난 10일부터 한스 울리히 클로스 독일 하원 외교위원장을 초청, 양국간 관계정상화를 논의하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을 차례로 방문,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클로스 위원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순탄한 길로 접어든 양국관계의 모든 문제를 대화와 접촉을 통해 풀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고 이란 관영통신 IRNA가 12일 보도했다.

양국은 또 하타미 대통령과 나테크 누리 이란 국회의장이 오는 3월 임기가 끝나기 전 독일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이란은 1997년 외교분쟁을 겪은 이후 서방 선진국 중 미국 다음으로 독일과 나쁜 관계를 유지해 왔다.

◇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도 유럽연합(EU)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다. 카다피는 지난주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에 직접 전화를 걸어 관계개선을 타진했다.

프로디 위원장은 이같은 카다피의 의사를 EU회원국들에게 전달하고 카다피의 EU본부 방문과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과 지중해연안국의 포럼 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영국이 11일 리비아의 스커드 미사일 부품 밀반입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자 리비아가 즉각 영국의 우려에 주목하고 있으며 영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밖에 유럽 국가들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레바논.알제리 등도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이란과 이라크〓1980년부터 8년간 계속된 전쟁 이후 처음으로 경제사절단을 주고 받는 등 경제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는 상공회의소 회장을 단장으로 한 경제사절단을 11일 이란에 파견, 양국간 교역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은 이미 지난해 말 상무장관의 상호방문을 통해 식량.의약품.농산물 및 공산품 교역을 확대하는 내용의 세가지 협정에 합의했다.

이란은 최근 이라크의 전쟁포로를 석방했으며, 이라크는 이란인들의 자유로운 바그다드 왕래를 허용하는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

◇ 전망〓이슬람연구소 김중관(金重寬.명지대 교수)연구원은 "중동국가들이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에 적극 나선 것은 획일적인 아랍민족주의의 해체 조짐" 이라고 분석했다.

金교수는 "시오니즘에 대항해 아랍국가들을 묶는 구실을 했던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협상 진전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랍민족주의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각국의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고립은 곧 존립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위기의식도 현실노선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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