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바꿔, 바꿔, 세상을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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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일으킨 파장과 파괴력은 메가톤급이다.

시민단체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낙선운동에 찬성하는 사람이 조사대상자의 80%이고 불법으로 판정나더라도 낙선운동을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72%에 이른다. 이 정도의 여론이라면 이미 더 이상 논란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선거법 위반을 들먹이기도 하지만 게임은 이미 끝났다. 실정법의 규정이 어떠하든 그 법을 집행하기는 틀렸다.

그것은 담배가 마리화나 이상의 중독성과 위해성을 지녔음이 입증된 지 오래지만 흡연인구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누구도 담배를 마리화나처럼 규제할 엄두도 못내는 것과 흡사할 것이다.

네티즌들은 정치인들의 격렬한 반응에 통쾌하고 후련하다는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어찌 네티즌뿐이겠는가. 절대다수의 국민이 모처럼 통쾌감을 맛보고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론도 귀찮은 대상인 정도였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오직 그들의 정치보스였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었던 국민의 무력감. 짧은 선거운동기간에는 장마 속에 반짝 햇빛나듯 잠시 힘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정치인들이 제시한 선택지 중 하나를 피동적으로 고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을 키워왔다.

이번에 시민단체가 선도한 낙천.낙선운동의 가장 큰 공로는 국민에게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아 주었다는 데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개별적인 꿈은 그저 꿈에 지나지 않지만 그 꿈들이 모이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개별적으로는 그저 정치불신과 무관심.체념에 불과하던 것도 모이면 정치를 바꿀만한 위력있는 자신감으로 승화될 수 있다. 정치인들도 난파선의 쥐처럼 나름대로 예민한 정치적 후각을 지녔기에 이번 낙천.낙선운동의 위력에 비로소 떨고 있다.

지난 10일 경실련의 명단발표 과정에는 분명히 문제도 없지 않았다. 또 부적격자로 발표된 대상 가운데 억울한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재확인이나 사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들어 전체를 부정하려 해선 안될 것이다. 문제는 가지가 아니라 줄거리가 옳으냐 그르냐일 것이다. 우리 정치에는 자동차처럼 리콜제가 없다. 한번 선출하면 아무리 불만이 있고 흠결이 드러나도 4년 동안은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뽑을 때 신중해야 하고 선택이 정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보는 너무도 빈약하다.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운동은 이 정보부족의 갈증을 메워준다는 점만으로도 가치있는 행동이다.

정치인들은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봉쇄하는 것은 헌법상의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제 선거까지의 기간은 불과 석달이다.

그러나 국민의 개별적인 정치개혁 의지를 결집한다면 정치인들이 회피한 정치개혁을 국민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민단체들의 정치개혁운동에는 두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시민단체들의 운동이 기성정치인들에게만 국한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무늬는 신인이지만 공천만 준다면 어느 정당이든 마다하지 않고 옮겨 다니는 철새 신인들이 수두룩하고 또 이 철새 신인들의 검은 과거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구악(舊惡)이 물러난 자리를 신악(新惡)이 차지한다면 모처럼의 시민개혁운동도 헛수고다. 기성.신인을 가릴 것 없이 정보가 골고루 수집되고 공개돼야 마땅하다.

또 단순히 인물에 관한 정보 및 평가에만 그쳐서도 안된다. 각 정당의 이념이나 구체적인 정치.경제.사회문제에 대한 각 정당의 정책 및 입장 차이에 관한 정보와 평가가 상세히 제공돼야 한다.

1인 2투표제도 검토되고 있는 마당이기에 이 점이 더욱 더 중요해진다. 대안(代案)정당을 모색할 수 있는 정보의 제공은 인물정보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시민들도 이번에야말로 적극적으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행동할 때다. 시민단체의 활동을 그저 방관하면서 무임승차하려 해서는 안된다. 꿈꿔왔던 시민의 반란이 바야흐로 시작됐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모든 것이 변해버렸어… 세상을 다 바꿔 바꿔. "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 '바꿔' 의 가사가 정말 실감나는 때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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