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욱의 신작기행] 신춘문예 매력은 새로움의 반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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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각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라는 제도는 수십년 동안 세계의학의 총지식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특이한 병의 병원(病源)이었다.

그 병이 수많은 문학지망생들에게 혹은 간절한 소망의 혹은 좌절과 실망의 전도체로 존재해 온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러나 그 열병의 열도도 문학의 시세가 가라앉는 것만큼 서서히 가라 앉아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벽두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신춘문예작품을 읽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그 즐거움은 모든 새로운 것을 볼 때 영그는 즐거움과 다르지 않기에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춘문예 당선을 둘러싸고 응모자들은 한참동안 희비의 롤러코스트를 탔을 것이다.

예술은 새로움의 반복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는 신춘문예 작품에도 곧장 적용된다. 해서 우리는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볼 때 새로움의 종류와 내용에 눈을 맞춘다.

누구도 쉬 해내지 못한 표현력, 상황의 서술력, 개성이 반짝이는 문제의식, 상식의 눈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생의 어떤 국면을 지긋이 응시하는 안목 등등이 그런 새로움의 세목들일 터이다.

이번에 새로 등단한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이런 대목이다. '선생의 새로움은 그런 세목을 채우고 계신지요' 라고. 황광수의 '폭염' (세계일보)은 끈질김의 이미지로 조각되어 있다.

단편이란게 여러 소재와 사건을 소화할 수 없고, 그런만큼 한 두가지 소재나 사건에 집중해야 함이 당연하지만 이 소설은 그 집약의 밀도가 특히 인상적이다.

거친 표현을 용서하신다면, 영판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자라 목이다. 그러고 보니 자라 목은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자재롭게 하지 않는가. 특정 소재나 사건을 꽉 물고 필요에 따라 늘였다가 댕겼다가 하는, 요컨대 원근법적인 서술과 묘사는 소설쓰기에 빠져서는 안될 대목이려니, 그런 점에서 자라 목과 같은 작가의식은 중요한 자질이 아닐라 할 수 없겠다.

오영섭의 '조롱' (중앙일보)은 숨은그림찾기 같은 소설이다. 숨은그림찾기가 무엇인가. 눈에 보인다고 다 믿지 말라는 격률을 규칙으로 삼고 있는 놀이다. 소설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문면에 드러나는 사건과 서술만 쫓아가다보면 작가의 짓궂은 장난에 낭패보기 쉽상이다. 그 장난을 유독 즐기는 작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 또한 그 게임을 즐기기에 적당한 안목이 있다면 숨은그림찾기는 흥미로운 글읽기가 된다.

쌍방이 서로 재미있게 참여하는 게임이 되려면 작가는 착시효과를 유발하는 그림의 적절한 배치를 섬세하게 수행해야 한다.

'조롱' 은 작가에게 바로 그 섬세한 그림배치의 필요성을 일러주었다는 점에서 제 몫 하나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하겠다.

문학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사이로 신춘문예 당선호들은 이제 갓 모험의 항해를 나선다. 문학의 조종이 운운되는, 그런만큼 전에 없는 혼란과 높은 파랑이 기다리고 있는 이 모험의 항해에 파선을 겁내지 않는 그들의 탄탄한 용기, 소망한다.

이성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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