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옥표’3助 내조법 ② 29세에 대기업 사장 '사모님' 된 이후 영부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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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인간적 단점 꼬집어 주는 비선 참모

월간중앙김 여사의 일련의 활동을 종합해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 중심의 기독교적 가치관은 정통 보수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그는 이 대통령과 함께 오랫동안 소망교회에 다니며 각종 봉사활동을 해왔다.

소망교회의 한 목사는 “가정 중심의 신앙생활은 우리 교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 중 하나”라며 “김 여사의 가족은 깊은 신앙으로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갔다. 김 여사의 긍정적이고 밝은 면은 신앙인으로서 최고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가족 해체, 가정의 위기가 거론되는 이 시대에 어머니 손 맛이 나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가족을 최우선으로 삼는 영부인의 가치관은 시대에 어필할 수 있는 경쟁력일 수 있다.

김 여사가 전업주부의 특기를 살린 음식 내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이후 대통령의 아내로 직언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강인함을 보였다. 29세의 나이에 대기업의 사장 ‘사모님’이 된 이후 회장 부인, 서울시장 부인 등으로 대외활동을 해왔고, 다일공동체와 적십자 등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준비된 영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여사는 1992년 이 대통령이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996년 종로구 출마와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 이어지는 미국 체류와 2002년 서울시장 출마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든든한 동반자로서 옆을 지켰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최진 소장은 “영부인이라는 자리는 대통령의 인간적 단점을 가감 없이 직언할 수 있는 유일한 비선 참모”라며 “인간적 직언 외에 영부인은 세상의 여론과 민심을 근거리에서 역시 가감 없이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대선기간에도 남편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 아침에 나가는 길에 남편에게 준 편지에는 ‘고맙다’는 표현을 3분의 2 정도 쓰고, 당부의 말은 1번, 2번, 3번 식으로 적어서 줄 정도로 꼼꼼한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편지 내용에는 “사람들 앞에서 코를 풀지 마세요. 서양에서는 괜찮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결례예요”

“여성과는 절대로 싸우지 마세요. 남성은 흙으로 만든 토기이고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로 만든 본차이나이기 때문에 부딪치면 토기가 깨져요” 등 소소한 에티켓부터 자칫 지나치기 쉬운 여성에 대한 배려까지 조목조목 적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는 강원도 원통·홍천, 경기도 평택, 경상도 등을 직접 찾았고, 원유유출사건이 있은 후에는 후보자 부인 중 가장 먼저 태안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63빌딩에서 한나라당 후보 대회를 할 때 아줌마부대를 몰고와 ‘이명박’을 연호할 정도로 억척스러운 면도 있다.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가 비판받자 “1등은 원래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참고 견디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2007년 <경북일보>와 인터뷰에서 “제 고향인 대구는 부족할 것 없는 도시였지만 지금은 경제가 좋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구·경북이 다시 일어나는 기폭제와 비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한반도대운하”라고 말하며 남편의 대선 공약을 돕기도 했다.

영부인이 된 이후 극도로 말을 자제했던 김 여사는 9월3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위원 부부동반 만찬 때 의미심장한 말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의 인사말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 여사는 “바다에는 파도가 치게 마련이고 파도가 쳐야 바다 밑에도 산소가 공급돼 고기가 살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조용한 바다는 고여서 썩는다”며 “국정에도 항상 파도가 치게 마련이니 그냥 꿋꿋하게 가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여사는 이 자리에서 지난해 쇠고기협상 파문과 촛불시위 때의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광화문 시위대가 연일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시위대가 매일 늘어나니 그렇게 강한 대통령도 조금은 상심하시는 것 같더라”면서 “관저에서 내가 ‘오늘은 시위대가 얼마나 모였느냐”고 하면 대통령은 ‘10만 명이다’라고 했고, 그 다음날은 ‘30만 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시위대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니 흔들리지 말고 힘을 내시라’고 말씀 드렸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랫사람의 작은 실수에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로,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오랫동안 곁에 둔다. 현재 청와대 관저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도 김 여사가 10대 시절부터 친정집에서 함께 있었고, 결혼하고 청와대에 들어올 때까지 50여 년을 같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여대의 이배용 총장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한국적 전통과 가치를 잘 지켜가면서 미래를 향해 온 국민을 함께 아우르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한 자리”라며 “김윤옥 여사는 이 시대에 적합한 밝고 부드러운 긍정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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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여사가 추석연휴를 앞둔 9월30일 서울 신월동 소재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을 방문, 전·의경들이 선물한 초상화 액자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글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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