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넘치는 에이즈환자 국가서 포기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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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1세기 벽두부터 아프리카 대륙이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로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케냐가 "에이즈 때문에 국가존립이 흔들린다" 며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공중 의료기관들이 환자 치료를 사실상 중단했다.

8일 미 USA 투데이에 따르면 남아공은 병원으로 찾아오는 에이즈 환자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있다. 막대한 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의사들에게 입원 환자 중 일부를 포기하라고 강요까지 한다는 것이다.

남아공의 에이즈 참상(慘狀)은 상상을 초월한다.

AZT와 같은 치료제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진료를 받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부모로부터 천형(天刑)을 물려받은 어린이들에게도 단 한번의 진료만 허용된다. 환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의료시설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확인된 에이즈 감염자만 인구의 10%인 4백만명에 이른다.

포트 엘리자베스시 교외 도라 닌자 병원 소아과장 베커는 "어린이 에이즈 환자가 첫번째 진료를 받은 뒤 다시 병원을 찾아오면 아이 어머니에게 입원 대신 집으로 가 죽음을 준비하라고 권한다" 고 말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병원들은 모든 예산을 에이즈 치료에 쏟아붓는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연구비용은 줄이고, 가망없는 환자들을 조기 퇴원시키면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환자 가족들의 손까지 빌리며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주택건설.교육 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대부분 에이즈 치료비로 돌리고 있지만 경제규모 자체가 미미해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남아공은 1997년 보건예산으로 34억달러(약 4조원)를 책정했다. 4천만명의 인구를 감안하면 1인당 85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엄청난 비용과 장기간의 치료를 요하는 에이즈에 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토 차발라라-시망 보건장관은 "우리 정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에이즈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고 말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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