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못 내고 말만 넘칠 것” 기후회의 앞두고 비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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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덴마크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회의가 ‘말잔치’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다음 달 7~18일 코펜하겐에서 열린다. 여기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안이 도출될 것으로 전망돼 왔다.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규모를 정하고 개발도상국의 ‘저탄소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세우는 게 핵심 쟁점이었다. 하지만 AFP 통신 등 외신은 “코펜하겐 회의가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를 내놓는 데 그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법적 합의 대신 정치적 거래”=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회의 준비모임에 참석 중인 아르터 룽게 메츠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기후변화협상 대표는 5일 “사람들이 점점 더 큰 틀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코펜하겐에서 틀을 만든 뒤 몇 달 후에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시한을 밝히지 않은 채 “통상 3~6개월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 밀리반드 영국 기후변화장관도 같은 날 하원 토론회에 출석해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코펜하겐 회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정이 아니라 그 준비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 통신은 이와 관련, “유럽과 유엔 관리들이 법적 합의(legal accord) 대신 정치적 거래(political deal)를 시도하고 있다”며 “이는 암묵적으로 (기존 목표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난 쏟아져=기후변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것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미국 등이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등 개도국의 불참을 이유로 교토협약(1997년) 가입을 거부했던 미국은 이번에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바르셀로나 준비모임에 참석한 조너선 퍼싱 협상대표는 자국 감축 목표는 제시하지 않은 채 중국에 대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반면 중국과 개도국들은 거꾸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더 큰 폭의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EU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5년 대비 17% 감축안이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엔 20%를 줄이는 법안이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하지만 파 오스먼 자르주 감비아 협상대표는 “선진국들의 현재 목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최소한 40%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3일 하루 동안 준비회의 참석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시민·환경단체들도 미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린피스 환경정책국장인 마틴 카이저는 “미국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법적 구속력 있는 코펜하겐 협정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며 “이제 유럽이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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