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 열풍…김용옥씨 강연 스튜디오 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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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0년 벽두의 문화계에 동양 바람이 거세다.

서점가와 방송계에는 20세기를 지배한 서양 과학문명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자연과 인간을 함께 아우르는 동양적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현상이 두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교보문고.종로서적 등 대형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5위까지는 법정.원성.현각 등 스님과 김용옥(사진)씨의 저서가 모두 휩쓸 정도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순위를 보면 1위에 법정의 '오두막편지' (이레)가 올라 있는 것을 비롯해 김용옥씨의 '노자와 21세기' (통나무.2위), 원성의 '풍경' (이레.3위), 현각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열림원.5위)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종로서적.영풍문고의 집계에서도 이런 추세는 마찬가지다.

특히 '풍경' 은 이미 30만부 이상 팔려나가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고 '오두막 편지' 는 출간 2주 만에 10만부가 나가는 기세를 떨치고 있다.

최근 법정스님의 책을 읽은 회사원 박남두(34.서울 송파구 잠실3동)씨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그의 가르침은 마음의 여유와 관용을 배울 수 있는 동양적 지혜를 전해줬다" 고 말했다.

'김용옥 열풍' 은 출판뿐만 아니라 방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 출간과 함께 시작한 EBS 프로그램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는 장년층 시청자들을 대거 브라운관 앞으로 모으는가 하면, 지금까지 TV에 등을 돌렸던 지식인 사회에도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2.3%대로 EBS 평균 시청률의 6배 가까이나 될 정도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아리랑TV 스튜디오에서 매주 열리는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방청객들이 녹화 1시간 전부터 2백여 좌석을 차지한다.

돈으로 방청객을 사는 여느 프로그램과 달리 자발적인 관객들이다.

그중 60% 가량은 책까지 들고와 강연을 들으며 내용을 확인하기도 한다.

조윤상 PD는 "지난해 11월말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이 40여명에 이른다" 며 "2월초 강의가 끝나는 것에 맞춰 '개근' 방청객에겐 수료증도 수여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동양학에 대한 관심은 서양에서도 높아 지난 4년간 미국에서출판된 동양 관련 서적이 8백여권에 이른다.

이런 경향에 대해 고려대 현택수(사회학)교수는 "최근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혼탁해진 세상에서 편안해지고 싶은 욕구와 높은 경지에 이른 인물들의 지혜를 엿보고 싶은 심리 등이 맞아떨어진 것" 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동양의 부상' 은 새로 구상되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어 올 한해 문화계는 동양바람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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