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내렸어? 우리도 내려!…5m 이웃끼리 유통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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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m 사이를 두고 경쟁하는 이마트 사상점과 홈플러스 서부산점. 최저가격제.마일리지.사은행사 등 두 점포의 마케팅 경쟁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부산=정현목 기자

부산시 사상구는 부산지역에서 가장 물가가 싼 곳으로 통한다.

할인점에서 파는 라면.맥주 등 공산품 가격은 부산지역 다른 점포보다 적어도 10~20원부터 최고 10%까지 싸다. 이곳 할인점이 싸다는 소문에 주말이면 광양.진해.김해 등지에서도 차를 몰고 쇼핑하러 올 정도다.

이 지역을 '쇼핑 천국'으로 만든 당사자들은 바로 괘법동에 5m 간격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두 개의 대형 할인점인 이마트(사상점)와 홈플러스(서부산점)다. 1999년부터 터를 잡은 홈플러스 옆에 지난해 말 이마트가 매장을 냈다. 할인점 업계 1, 2위 점포가 '전투'에 가까운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둘의 경쟁은 마케팅 싸움을 넘어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번지면서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의 경쟁 강도는 양측 사무실에 붙어 있는 슬로건만 봐도 알 수 있다. 홈플러스 사무실엔 'B2'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는 'Beat 이마트'의 약자다. "'박살내자 이마트' 정도의 어감으로 보면 된다"고 홈플러스 관계자는 귀띔한다. 이마트 사무실엔 '새로운 각오, 경쟁승리'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두 할인점에는 유통업계의 일반적인 슬로건인 '친절'이니 '봉사'니 하는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두 할인점 직원들은 매일 상대방 할인점에서 24시간 대기하다시피 하며 가격 조사를 하고, 상대방이 조금 싸게 판다 싶으면 곧바로 자기 점포의 가격을 내려 버린다. 가격 조사를 토대로 하루나 이틀 후 전 매장의 가격을 조정하는 관행을 깨는 것이다. 양측 본사도 이 점포들엔 유일하게 가격 결정 재량권을 부여하며 '싸움'을 응원하고 있다.

이마트의 한 관계자는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홈플러스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며 "초기엔 서로 상대방 직원을 쫓아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기에도 지쳐 아예 눈감아 버린다"고 말했다.

마케팅 경쟁도 불꽃이 튄다. 이마트는 홈플러스의 마일리지 시스템인 '패밀리카드'(2002년 11월 도입)에 맞서 지난 2월 이와 비슷한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다. 전국 65개 이마트 매장 중 이런 제도를 처음 마련한 것이다. 할인점 업계에 확산되고 있는 24시간 영업도 이곳에서 촉발됐다. 홈플러스가 지난해 10월 24시간 영업을 시작하자 이마트도 4월부터 24시간 영업에 돌입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스포츠용품.문구용품 매장을 넓히고, 고객 편의시설도 확충했다. 다른 할인점에서는 하지 않는 사은행사도 이들 두 점포는 수시로 한다.

그런가 하면 이마트가 개점 직전 전 직원 해병대 입소훈련을 하자 홈플러스는 전 직원에게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5시간 야간행군을 시키는 등 서로 지지 않기 위한 신경전이 대단하다.

현재까지 이마트는 전국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홈플러스는 친숙도.고정고객을 앞세워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두 점포의 하루 평균매출은 3억2000만~3억5000만원선. 월 매출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홈플러스 고재영 점장은 "소비자들은 싼 가격 외에 부가 서비스가 많아 이익이지만 두 점포는 과도한 마케팅 비용 부담 때문에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두 점포가 '칼끝 경쟁'을 하고 있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영남권을 기반으로 성장해 '북진'하고 있는 홈플러스와 수도권에서 출발해 '남진'하고 있는 이마트가 영남권 최대 상권인 부산지역에서 맞부딪힌 것이다. 괘법동의 두 할인점은 '수성'에 나선 홈플러스와 '공략'에 나선 이마트 간의 대리전 양상이다. 두 할인점이 '다른 곳은 몰라도 사상에선 이겨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부산에선 홈플러스가 지난해까지 점포 4개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마트가 지난해 이 지역에 한꺼번에 3개의 점포를 더 열어 지금은 이마트 점포가 6개로 수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홈플러스가 부산 시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중소 규모의 할인점 업체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마트도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부산 사상지역의 최저가 행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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