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 없으면 생활 너무 불편 … 외국인 과학자 유치에 큰 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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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이 과학 선진국이 되려면 국내 과학자도 잘 길러야 하지만 우수한 외국 과학자를 많이 영입해야 해요. 그러나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살기에는 너무 불편합니다.”

캐나다 국적의 POSTECH(포스텍·옛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홍원기(50·사진) 주임교수.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기상청 등에서 우수한 외국인 과학자들을 영입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5년 전부터 한국에서 교수로 있지만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은 여전히 경제·사회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말도 잘하고 다들 알아주는 대학의 교수이면서 한국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교포인 자신이 그런데 진짜 외국인들은 얼마만큼 한국에서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홍 교수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들어봤다.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외국의 경우 이름과 e-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이 가능하나(예: Amazon, eBay, Twitter) 우리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인터넷 쇼핑, 신용카드 발급, 공연표 온라인 구입, 휴대전화 가입도 못하는 등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15년 전 보증인을 세워 내 휴대전화를 가입해 놓은 덕에 내 이름으로 아내와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가입해 사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생요금제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어떻게 고치면 되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증 번호를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신분이 확실하고 일정 수입이 있는데 그런 제약을 받도록 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주민등록번호 이외에 외국인 과학자들이 한국을 기피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걸 시급히 고쳐야 하나.

“과학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가족과 떨어져 살려고 하지 않는다. 주요 도시에 외국인 학교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또 외국인 과학자를 유치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이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행정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POSTECH은 국제화돼서 잘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대학은 그렇게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 과제 수행에 불편하지 않나.

“연구 과제 제안서와 결과 보고서를 한글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나는 불편함이 없지만 한국말과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전공 분야인 정보통신 분야에 대해 조언을 한마디 한다면.

“한국의 인터넷 업체들은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할 기회를 많이 놓쳤다.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해 너무 많은 개인 정보를 요구한다. 이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꼴이다. 외국 업체들은 한국 업체가 개발해 한국에만 서비스하는 것을 뒤늦게 모방하는 데도 세계 강자가 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변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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