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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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의 음력은 입춘무렵에 새해가 시작된다.

원래 중국문명의 초기에는 동지무렵에 새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역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동지에 가장 짧았던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음양(陰陽)의 순환과정 중 양의 출발점으로 보아 1년의 시작으로 의미를 둔 것이다.

달의 공전주기가 지구의 공전주기와 꼭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동지는 제일 가까운 초하루에서 며칠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 동지와 초하루가 딱 겹칠 때는 해와 달의 배열이 특별한 질서를 보이는 현상이므로 인간의 질서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점으로 생각했다.

천문관측이 꽤 정밀해지자 19태양년의 길이가 235삭망월의 길이와 거의 일치하는 주기성이 발견됐다.

그래서 19년 1장(章)을 우주질서의 기본주기로 인식한다.

또, 4장의 주기가 돌아가면 삭(朔)과 동지가 겹치는 시각이 제 자리로 돌아온다고 해서 76년 1부(部)를 더 큰 주기로 본다.

'초하루 동틀녘의 동지(朔旦冬至)' 가 76년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일월(日月)뿐 아니라 오성(五星), 즉 행성들의 주기가 모두 겹쳐지는 거대한 주기가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 큰 주기의 출발점이 곧 역원(曆元)이었다.

각 시대 역법이 이 주기의 크기와 역원으로부터의 거리를 어떻게 잡았는지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살필 수도 있다.

우주질서의 주기성에 대한 이 신비주의적 사고는 13세기말 원(元)나라의 수시력(授時曆)에서부터 사라졌다.

관측기술이 더욱 정밀해져서 천체들의 운행주기가 하나의 모(母)주기로 통합될 수 없음이 밝혀졌고 정복왕조인 원나라는 중국의 전통적 세계관을 묵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비주의가 문명 주류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말기의 심한 혼란 속에 고종이 즉위한 1863년은 60간지(干支)의 마지막인 계해(癸亥)년이었다.

갑자(甲子)년에는 세상이 크게 뒤집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세상을 휩쓸었고, 우리 토착신앙 가운데는 이 무렵의 사상적 격동으로부터 굴절된 측면을 남기고 있는 것이 많다.

오늘 맞는 새 천년과 새 세기는 십진법 때문에 기계적으로 돌아오는 것일 뿐, 다른 해와 아무 차이도 없다는 것이 합리적 사고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는 긴장과 흥분을 묵살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아무래도 '새 천년' 은 허황하다.

'옛 천년' 의 흐름을 일관되게 파악하기도 어렵고 천년 후 인류문명의 존재를 장담할 수도 없다.

'새 세기' 의 의미와 과제는 훨씬 절실하다.

그러나 기본은 역시 '새해' 의 의미다.

1년, 또 1년의 의미가 충실히 쌓였다면 지난 세기도 '치욕의 세기' 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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