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서구 지성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제17회 국제카탈루냐상을 받은 직후의 레비스트로스 모습. 국제카탈루냐상은 스페인 카탈루냐 주정부가 인류에 큰 공헌을 남긴 사상가·예술가·과학자 등에 게 주는 상이다. [AFP=연합뉴스]
그의 타계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4일 새벽. 지성의 한 세기가 마감했다는 소식에 국내 학계도 감회에 젖었다. 그는 1981년 한국에 3주 가까이 머물면서 강연과 현장 연구를 하기도 했다. 55년 나온 그의 명저 『슬픈 열대』는 문학적 표현으로 일반 독자 사이에서도 널리 읽혔다. 브라질에서의 인류학 현장 연구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로 ‘문학’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대표적 문학상인 공쿠르상위원회는 “『슬픈 열대』가 ‘소설(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상을 줄 수 없어 아쉽다”고 했을 정도였다.
레비스트로스는 무엇보다 ‘문명’과 ‘야만’, ‘서구’와 ‘비서구’의 경계를 허물었다. 우수한 서구 문명이 미개한 원시문화를 지배한다는 서구 사회의 편견을 비판했다.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꿰뚫는 인간 정신의 동일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야만적 문명’에서도 인류 보편적인 문화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중심의 문명관을 뒤집는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그의 연구 성과는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루이 알튀세 등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쳐 20세기의 주요한 철학 사상을 형성했다.
◆신화가 된 사상가=레비스트로스는 80년 장 폴 사르트르의 사후 프랑스 지성계를 이끌어 갈 사상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1905년생인 사르트르와 레비스트로스는 고작 세 살 차이다. 둘 다 이미 20세기의 ‘신화’가 된 지식인이어서 최근 레비스트로스의 타계 소식이 더 ‘신화적’이기도 하다.
48년 프랑스로 되돌아와 제출한 박사 논문이 책으로 나온 게 『친족의 기본구조』(49년)다. 이어 55년에 낸 『슬픈 열대』가 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그는 일약 ‘스타 학자’로 떠올랐다. 『야생의 사고』(62년)에서 ‘실존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함으로써 사르트르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실존주의’와 체계·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구조주의’ 사이에 필연적인 충돌이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임봉길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슬픈 열대』가 그의 주저(主著)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철학에서 인류학으로 넘어가는 동안의 과도기적 저서”라고 설명한다. 레비스트로스 사상의 정수는 64~71년에 나온 『신화학』(전 4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레비스트로스가 철학과 문예 이론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그의 ‘구조주의 인류학’에 대한 국내 학계의 이해는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임 교수는 “‘문명’과 ‘야만’, 과거와 현재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1만 년 전의 인류나 현대인이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 그래서 어떤 문명이나 민족도 다른 집단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게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라고 설명했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