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 현명하게 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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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그 후 정부는 녹색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여력에 대한 연구를 1년에 걸쳐 진행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8월 감축 목표치 세 가지를 제시했다. 2020년까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가정한 전망치(BAU)를 기준으로 각각 21%(1안), 27%(2안), 30%(3안) 감축한다는 시나리오다.

정부는 공청회·토론회를 40여 차례 여는 등 나름대로 토의와 의견 조율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지만 여전히 산업계·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사이에도 이견이 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사안인 만큼 어느 정도 논란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우선 기업들이 가장 낮은 감축안인 1안을 지지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설비 투자 등 당장의 부담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감축 목표를 가능한 한 낮추고 또한 발표 자체도 되도록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시나리오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높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한국의 시나리오를 2005년 기준으로 바꾸면 각각 8% 증가(1안), 동결(2안), 4% 감축(3안)이 된다.

그중 가장 야심 차다는 3안도 일본의 30% 감축에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다. 이는 ‘1990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독일·스웨덴·노르웨이 등과 비교하면 더욱 낮은 수준이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보면 한국의 가계소비 감소 예상액(3안 선택 시 최대 21만7000원)은 일본의 288만원에 비하면 8%에도 못 미칠 만큼 부담이 낮은 편이다. 다른 개도국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감축 목표 시나리오가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2020년 배출 전망치(BAU) 대비 26%까지 감축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지난달 공표했다. 브라질과 멕시코도 적극적인 목표를 검토 중이다. 감축 자체에 소극적이던 인도와 중국까지 입장을 바꾸어 저이산화탄소 경제를 향한 무한경쟁에 들어서고 있다.

녹색경쟁(Green Race)의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이런 국제적 흐름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년차, 내년엔 G20회의를 주관할 정도로 성장한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감축 의무를 요구받는 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엿한 중견국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라는 국제적 시선도 강해지고 있다.

기후변화의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낼 수 있는 호기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은 그를 위한 가장 강력한 시그널이 될 것이다. 당장의 작은 고통 때문에 주저앉을 것이냐, 아니면 우리 후손을 위해 현명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냐,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지금 우리는 서 있다.

김건 고려대 교수·화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