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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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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외고는 1984년에 미천하게 삶을 시작했다. 정식 고등학교가 아니라 직업학교로 분류되는 ‘각종(各種)학교’에 속했다. 이런 학교가 스물 몇 해 뒤에 지배적 종의 자리를 차지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물론 없었다. 그런 성공은 우리 사회 환경에 잘 적응한 데서 나왔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외고가 널리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외고를 더 많이 세우든지, 만일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면, 다른 고등학교들이 외고의 장점들을 본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화의 과정이다. 변이들(variations) 사이의 경쟁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것이 선택되도록 한다. 그렇게 선택된 변이는 실패한 변이들이 차지했던 틈새들로 퍼진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생태계는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외고를 변화시킬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변화는 스물 몇 해 동안 이어진 진화의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다.

설령 외고에 바람직하지 못한 특질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부정적 측면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 고치고 싶다면, 진화의 최종적 산물인 외고 자체보다는 그것의 부정적 특질을 낳은 것으로 추측되는 환경의 특정 조건들을 바꾸는 것이 논리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뛰어난 것들을 용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마음은 수십만 년 이어진 원시 사회에서 진화했다. 그때 인류는 겨우 생존할 식량만을 지녔고 작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균등하게 나누어 가졌다. 즉 평등한 가난이 기본 조건이었다.

지금부터 1만여 년 전에 문명이 갑자기 발전하면서, 사회가 부쩍 커지고 큰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런 현상은 자연스럽지만, 평등한 가난 속에 진화한 우리 마음은 재산에서의 격차를 좋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악플’이나 ‘안티 사이트’가 드러내듯,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별다른 까닭 없이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

이런 경향은 경쟁이 자유롭고 진화가 빠른 시장에서 특히 뚜렷하다. 우리 시장에서 지배적 종은 재벌이다. 가장 큰 미움을 받는 존재도 재벌이다. 그러나 지배적 종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위험하고 어리석다는 얘기는 재벌의 경우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1961년 6월 부정축재자로 몰린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에게 재계 사정을 설명했다. 당시 세법은 수익을 넘는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전시 체계여서, 세금을 제대로 납부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1위 안에 드는 큰 기업들의 총수들만 부정축재자로 구속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었다. 12위 아래 기업가들도 똑같이 행동했으나, 역량이나 노력이 부족해서 11위 안에 들지 못한 것이었다. 자원을 잘 운용하여 기업을 키운 기업가들을 벌하고 원조금이나 은행 융자를 낭비한 사람들을 무죄로 판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았다.

이 회장의 이런 설명을 박 부의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강의 기적’의 두 축인 정치 지도자와 기업가의 의기가 투합하는 순간이었다. 만일 그때 박 부의장이 통념대로 재벌들을 억압했다면, 거의 틀림없이 우리 경제는 실제보다 덜 성장했을 터이고, 지금 우리 사회를 받쳐주는 삼성이나 LG 같은 세계적 기업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의 결과가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고치려 드는 일은 본질적으로 성공을 벌하는 일이다. 평등과 같은 매력적 구호를 내걸더라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큰 성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우리의 본능을 이성으로 제어해야 한다. 걱정스럽게도, 근년에 우리 사회엔 성공을 벌하는 풍조가 거세졌다. 성공한 사람들을 ‘강남’이라 부르며 다수의 적의를 부추겨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특히 거세졌다.

1758년 9월 프랑스 경제학자 뱅상 드 구르네는 “막지 말고 내버려 둬라. 세상은 알아서 굴러갈 것이다(Laissez faire, laissez passer, le monde va de lui m<00EA>me)”고 외쳤다. 이 힘찬 구호는 억압적 중세 질서를 대신할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도래를 알렸다. 당시 진화라는 개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정신은 진화의 존중이었다. 만일 지금 살아 있다면, 구르네는 외칠 것이다, “진화하게 하라(Laissez evoluer).”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