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기여입학제' 긍정적 검토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정부가 대학의 경쟁력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입안한 BK21이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책 자체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이 제도가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이나 BK21에 참여하는 모든 대학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수가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공간과 교육재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재정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만으로 충당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같은 상황이다.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있는 나라는 대부분 대학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든가, 아니면 대학에 여러가지 형태로 기여한 사람들의 자녀나 후손을 그 대학의 입학에 특별히 고려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학입시에 사용되는 사교육비가 수조원에 달하므로 이제는 이를 공교육비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기여입학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입학과 돈을 바로 주고받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몇가지 조치를 미리 강구하면 괜찮을 것 같다. 우선 입학을 허락하는 방법과 그 돈의 사용처를 분명히 규정하고, 각 대학이 이를 지키되 어겼을 경우는 엄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기여입학생도 특수기능 보유자의 입학이나, 고교장추천 입학과 같이 수학능력이 있는 학생 중에서 학교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입학 사정을 공정하게 해 선발하면 된다.

또 기여입학은 정원 외로 하며, 조성된 자금의 많은 부분을 학비조달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좋을 것이다.

학사관리를 철저히 해 만약 부정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입학시키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기금을 사용했을 경우 기여입학생의 선발권을 박탈하든가, 형사처벌도 가능토록 해 학사운영에 차질이 없게 하는 장치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대학의 등위는 근본적으로 그 대학의 교수가 얼마나 많은 가치있는 연구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기여입학이 가능하다면 학교는 여기서 조성된 자금으로 교수들의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수한 교수를 경쟁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여건을 맞이할 수 있다.

정부가 교육재정을 위해 예산의 5% 확보를 공약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회복기인 현 경제상황에서는 여의치 못하다.

기여입학은 국가재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국가재정을 확보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BK21은 한 대학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경쟁성 제고보다는 이 대학이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투자 대비 생산성을 계산한다면 특정대학, 다시 말해 서울대에 대한 투자는 유수한 사립대와 비교할 경우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한 특정대학이 절대우위를 지키게 하는 것보다 많은 대학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대학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기여입학이 정부의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아주 유효한 교육재정 확보방법 중의 하나가 되리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론화가 있기를 바란다.

김석기(金錫基)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