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내마음의 프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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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 를 읽습니다. 법정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으니 시간 밖에서 만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범속한 세인인 나는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간 일상에 쫓겨 잊고 지냈던 내 자신에게 편지를 띄우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

1999년 삼백예순다섯날, 팔천칠백육십시간, 오십이만오천육백분…. 이렇게 하염없이 세다보니 열두장의 달력을 넘기면서 느끼지 못했던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갔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되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때론 속시원한 일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슴 답답한 때가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고, 바른 것을 바르게, 그른 것을 그르게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에 분노한 시간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이웃의 작은 사랑에 가슴이 벅차오르던 시간의 몇 곱절이나 됐던 탓입니다.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칭찬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해 비판을 하기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남의 잘못엔 날카로운 창을 들이대놓고 내 잘못엔 이런저런 변명을 해대며 눈감고 지나가지는 않았나 더듬어 봅니다. 그러나 솔직히 공정했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7개월여 동안 나라안을 뒤흔들고도 모자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고급옷 로비 의혹 사건의 백미는 '지도층의 거짓말' 이었습니다.

귀부인들의 거짓말은 고관대작들의 거짓말로 이어지며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지도층의 거짓말 꼬리물기' 에 분노했던 나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나 또한 곤혹스런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잠시 거짓말을 둘러댄 때가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부끄러운 일은 없었을까요. '없었다' 라고 얘기하고 싶은 유혹을 애써 누르며 잠시 한 해의 큰 마디를 짚어봅니다.

AP통신이 49년만에 처음으로 밝혀낸 미군의 노근리 학살사건이 떠오릅니다. 1950년 7월말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던 미군들이 '북한군이 농민 차림으로 피란민 대열에 섞여 침투하려 한다' 는 소문을 듣고 충북 영동 노근리 부근에서 피란민 수백명을 다리 아래로 밀어넣고 공중폭격과 총격으로 살해했다는 보도 말입니다.

기자직을 사랑하고 그 일을 하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만큼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온 이들이 주위에 널려 있는데도 '서민들의 진실' 에 귀기울이는 것을 게을리했다는 회한이 가슴을 칩니다.

부족한 점은 없었을까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시대 이후 함께 일하다 떠난 이들이 생각납니다.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의 얼굴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 둘 그 얼굴들을 되새겨 보니 정작 한 해가 다 가도록 그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다시 일자리는 챙겨 들었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나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안부전화라도 나눴던 이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군요. 하루하루 쫓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세밑까지 와버린 게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양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간이란 쪼갤수록 늘어나는 마술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여기까지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고백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십년 전의 문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사회, 거꾸로 도는 시계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회를 보며 화도 내 보고 좌절도 했지만 백지 위에 적어본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마음의 프리즘' 을 간직한 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통탄했던 내 모습이 또렷이 보이는군요. 그렇지만 기억하겠습니다.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물은 모여 바다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을 꼬집기 전에, 비틀린 사회를 원망하기 전에 내 그림자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부지런히 살펴 작은 발걸음이나마 바다를 향해 나아가도록 애쓰겠습니다.

이제 머잖아 묵은 해가 지고 새해가 떠오릅니다. 2000년의 새 날, 다시금 나에게 주어질 삼백예순여섯 날을 위해 이 편지를 고이 접어 서랍에 넣어두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잘못이 커 보이고, 그런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 꺼내 읽으렵니다.

지금의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추신: 2000년의 세모에 다시 나에게 보내는 편지엔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요.

홍은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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