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욱의 신작기행] 전경린 '다섯번째 질서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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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혼을 한 여자가 우연히 12년 전에 헤어진 정인(情人)의 소식을 듣는다.

이혼의 상흔 속에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남자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만난다.

전경린의 '다섯번째 질서와 여섯번째 질서 사이에 세워진 목조 마네킹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작가세계 99년 겨울호)에 전개되는 도입부 스토리라인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약간의 짜증과 실망의 기미를 내비친다.

또 연애 이야기? 그것도 상투적인 후일담 연애 서사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이 전경린의 기량을 믿지 못한 채 삐어져나온 예단임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에 이르면 그 예단을 매끄럽게 뒤집는 장면을 만난다.

일종의 반전과 같은 그 장면은 종래의 소설에서 반전 장면이 거느리고 있던 형태와는 아연 다르다.

예상치 못했던 급소를 찌름으로써 얻는 반전이 아니라 따스한 아름다움으로 조형되는 반전이기 때문이다.

그 반전은 충격을 산출하는 게 아니라 사태에 젖어들게 하고 수긍하게 하는 분위기를 낳는다.

12년 전 이한은 금주와 첫 입맞춤, 그것도 30여 분이나 계속된 입맞춤 이후 멀어져갔다.

입맞춤을 본격적인 연애의 개봉으로 그리고 생의 반짝임의 표상으로 상상하던 금주에게 이한의 그런 행동은 요령부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0년 후, 남편과 헤어진 금주는 이한을 찾는다.

그러고서야, 12년 전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서 멀어져간 이한의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이한은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이한은 금주에게 자신의 애정형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냥 예외적인 감정이지…우린 사실 뭘 하고 있는지 잘 몰라. 사랑하는지 미안해하는지, 열등감에 빠져있는지, 그리워하는지…난 사실 잘 몰라. 미안해. "

문제는 예외적인 감정이다.

성적 정체성과 그것에 줄을 대고 있는 사랑의 형태는 단연 자명해야 한다는 세속의 격률 앞에서 이한의 동성애는 열외의 존재다.

하지만 소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 앞에 서성거리는 이한에게 말은 건넨다.

성에 대한 선택과 취향에 예외적인 것은 없다고. 따라서 이한 너의 감정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세속의 이항 분립을 넘어서는 그 말은 나아가 우리에게 이렇게 전언한다.

아름다움은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 를 가리지 않는다고.

동성애 역시 90년대 들어 출몰한 다양한 화두 중의 하나이다.

인간의 정체성, 바꿔 말해 인간 존재론을 과거의 주석과는 달리 생각하고 해석하려는 일단의 흐름은 불가불 동성애와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동성애자의 인권, 성적 선택권의 존중 등등에 대해 때로는 조심스러운 의견 개진 또 때로는 격렬한 주장이 돌올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런 흐름의 자연스러운 확장 결과였다.

문학은 인간학이다.

따라서 이런 새로운 인간론에 접속하는 것은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은 외관상 바로 그런 접속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읽을만한 것은 동성애 같은 민감한 대상을 다루어서가 아니라 그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지극한 언어예술로 새삼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은 동성애에 관한 한 아주 효과 있는, 그러나 부드러운 선동물이 될 수 있다.

이성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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