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이종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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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입동(立冬)

녹슨 굴렁쇠 하나 이리 저리 굴리면서 귀뚜라미 한 마리 먼 산맥을 넘어 와서,

이 세상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다 헤매고 다니더니…

폐광촌 빈 아파트 열 길 벼랑 타고 올라

베란다 강아지풀, 그 옆에서 울고 있다

모처럼 마음 턱 놓고 목을 놓아 울고 있다

이박 삼일 동안 정식으로 날을 잡고 저무는 천지현황(天地玄黃)가이없는 저녁놀을,

이 세상 울고 싶은 놈 다 따라와 울고 있다

"제가 입상 후보자에 올랐는지도 몰랐습니다.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먼저 경합을 했던 분들에게 죄송한 생각이 들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동안 시조를 쓰는데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

99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이종문(44.계명대 한문교육학과 교수)씨의 겸손한 첫마디다.

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으로 등단한 그는 현재 '역류' 동인으로 활동 중. 내년에 첫 시집을 낼 계획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조 판에 뛰어든 것은 90년. 그때 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조집 '네 사람의 얼굴' 을 읽고 시조에 매료됐고 대구에서 활동하던' 시조시인들의 모임인' '오류' 동인지를 통해 시조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이씨는 시조를 쓰기 한참 전인 대학시절부터 시에 심취했던 '문학청년' 이었다.

그때는 시조보다 자유시에 관심이 많았고 꾸준히 습작도 했었다.

하지만 그땐 그럴듯한 결과물 보다 시는 '언어의 기교' 가 아니라 '내적 세계의 충만함' 에서 비롯된다는 교훈만 얻고 시인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그 후 8년 정도 창작을 중단했다.

그러니까 시를 쓰기 시작한 후 한참 뒤에야 시조에서 시의 참 맛을 알게된 경우다.

"시조란 민족의 호흡과 율격 그리고 가락이 올곧게 녹아 있다" 는 시조론을 펴는 이씨는 "많은 사람들이 시조에 좀 더 매진하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이 평소 간절한 소망이며 시조는 그런 가능성이 있는 열린 장르" 라고 말한다.

그의 수상작 '입동' 은 IMF 직 후 쓴 작품으로 힘들게 살아온 우리에게 IMF란 멍에가 더해졌을 때 느낀 아픈 마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글 신용호.사진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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