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결위] 예산안, 폐회 하루 앞두고 뚝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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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자민련 이긍규(李肯珪).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정기국회 폐회를 하루 앞둔 17일 공식.비공식 연쇄접촉을 벌이면서 파행으로 치닫던 국회를 일단 정상화쪽으로 돌려놓았다.

협상에서 이부영 총무가 "일단 약속대로 예산안을 회기 내에 처리한다는 게 우리 당의 방침" 이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긴장이 누그러졌다.

이어 "정치개혁특위를 재소집하자" 는 한나라당 주장을 자민련이 수용, 협상이 급진전을 보였다.

◇ 예결위〓언론문건 국정조사를 둘러싼 갈등으로 16일 오후부터 중단됐던 예결위는 17일 한나라당이 예산과 쟁점현안을 분리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한 이후 다시 가동됐다.

한나라당 이부영 총무가 "자정을 넘기더라도 처리하겠다" 고 선언하고, 본회의가 오후 7시로 잡히면서 예산안 세부 내용을 다듬는 계수조정 소위는 바쁘게 움직였다.

갑자기 예산안이 처리된다는 소식을 들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이목도 소위에 집중됐다.

소위에 떨어진 필수 삭감 규모는 6천억원.

장영철(張永喆)예결위원장은 "소주세율 조정으로 인한 세수 감소분 2천1백억원과 농어가부채경감을 위한 지원액 3천5백억원 만큼을 다른 분야에서 깎을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6천5백억원 증액을 요구했던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일부라도 반영하려면 다른 예산을 삭감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국회의원들로부터 받아놓은 '민원성 예산' 을 반영하기가 어려워졌다.

소위 위원들은 집요하게 민원이 적힌 쪽지를 디밀었으나 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은 "여야의 증액 요구는 3천억원을 넘길 수 없다" 고 배수진을 쳤다.

때문에 오후 한때 여야 의원들과 陳장관간에 오가는 고성이 회의실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들은 "내년이 총선이다 보니 지역구 사업을 챙기려는 의원들의 극성이 예년보다 훨씬 더 끈질기다" 고 푸념했다.

한나라당이 집요하게 주장한 호남지역 편중 예산은 끝까지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은 광주 광산업, 전남 도청 이전사업비 등을 삭감대상으로 지목했으나 "그렇다면 부산의 신발산업 육성비도 자르겠느냐" 는 여당측의 반박에 주저앉았다.

정부 원안에서 예결위가 잘라낸 각종 사업비는 9천억원에 달했다.

한편 예결위는 2000년 예산안을 정부 안보다 3천억원 정도 줄어든 92조6천억원대로 묶어 그나마 모양새를 갖췄다.

◇ 한나라당 의총〓이날 오후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여권에 대한 백화점식 성토 발언이 줄을 이었다.

특히 천용택 국정원장의 정형근 의원 미행관련 발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규택(李揆澤)의원은 "나도 정보통신부를 동원한 국정원의 감청실태를 폭로한 이후 국정원 직원들이 내 지역구를 들쑤시고 다니고 있다" 고 호소. 그는 "의원 전원이 국정원과 청와대로 가 항의농성을 벌이자" 고 즉석 제안했다.

하순봉 총장은 "불법 도.감청, 무차별 계좌추적에다가 국회의원을 밤낮으로 미행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고 비난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전날 "정치와 언론이 발목을 잡아 개혁을 못한다" 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의원들은 "정치의 최정상에 대통령이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 욕을 하는 것"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해 당선됐는데 도대체 준비된 게 뭐가 있나" 라고 비꼬았다.

김문수 의원은 옷 로비 사건 등을 빗대 "거짓말로 나라가 망하고 있다" 면서 "거짓말 와중에 국정원장이 오랜만에 참말을 하나 했다" 고 발언, 폭소가 터져나왔다.

이정민.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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