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정타냐, 함정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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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32강전> ○박정환 4단 ●천야오예 9단

제9보(94~102)=백△와 흑▲가 교환되기 전 백에게 이기는 길이 여럿 보였다. 그러나 이 수가 교환된 뒤엔 계가로 가느냐, 승부로 가느냐만 남게 된다. 16세 박정환 4단은 94로 움직이는 승부 코스를 택했는데 이곳이 바로 무덤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95는 선수. 하지만 96으로 굳게 연결하며 박정환은 ‘연결하기엔 너무 멀지 않으냐’고 묻고 있다. 그렇다. 누가 봐도 한 걸음에 연결하기란 불가능하다. 백도 A 부근이 약간 엷어 불안한 구석이 있지만 이 소소한 약점이 흑의 탈출로 이어지기는 너무도 요원해 보인다. 비교적 빠르게 두어온 천야오예 9단이 시간을 물처럼 흘려 보내며 고심하고 있다.

그러고는 97로 한 칸 뜀. 백의 다음 한 수는 정해졌다. 너무도 뻔한 102의 밭전자 째기. 박정환의 가늘고 긴 몸이 결정적인 일격을 준비하며 희미하게 전율하고 있다. 98, 100은 선수. 손 빼면 B로 사망한다. 결정타에 앞서 느긋하게 호흡을 조절하던 박정환이 문득 한기를 느낀 것은 이때였다.

이상하다. 97은 102가 너무 뻔하다. 다시 말해 상대는 102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직감적으로 이런 건 대개 함정이다. 상대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박정환은 이를 악문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기엔 너무 늦었다.

계가로 가고 싶어도 C쪽이 지저분해 견딜 수 없다. 박정환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102에 떨어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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