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화제] '더웨이' 김해일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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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실패로 1년간 노숙자, 7년간 수배자 생활을 한 30대가 갖은 고생 끝에 벤처기업가로 변신했다. 계명대 벤처창업보육사업단에 입주한 '더웨이(THE WAY)'의 김해일(38.사진)대표가 주인공이다. 유랑극단 생활을 한 부모의 2남 중 막내인 그는 군 복무를 마친 뒤 순탄한 삶을 살았다.

전문대 출신인 김 대표는 독학으로 익힌 피아노 실력으로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연주하고 낮에는 여성의류 회사 영업부에서 일했다.

그러나 1992년 한 주류업자의 후원으로 룸살롱.맥주집을 운영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경험 부족으로 1년여 만에 부도를 내면서 2억여원의 빚을 진 것이다.

그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등으로 도피생활을 하면서 노숙자로 전락했다. 혼자 살던 자신의 집이 압류당해 아파트와 병원 계단 등 문을 연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잠을 자야했다.

"당시 유서를 품고 다닐 정도였어요. 심신이 지쳐 죽고 싶었지요. 그런데 1년쯤 노숙생활을 하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막노동, 공장.목장일, 부동산.자판기 영업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자 은행 등에서 "딱하다"며 빚 일부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빚을 갚고 수배가 해제되기 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약간의 돈도 모았다. 경험을 살려 홈페이지 제작회사를 차렸지만 불경기로 장사가 안 돼 1년여 만에 폐업했다. 다시 '글씨 보정기구'사업에 뛰어 들었다. 연필을 똑바로 잡지 못해 글씨가 엉망인 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석고.찰흙 등으로 시제품을 만들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경북대 공학설계기술원의 도움으로 2003년 8월 시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업 자금 마련이 문제였다. 수소문 끝에 계명대 벤처보육사업단 문을 두드렸고 김영문(45.경영학부교수)단장의 도움으로 2003년 10월 이곳에 사무실을 열었다.

지난해 초 프랑크푸르트 국제문구박람회에 제품('필그립')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성공을 확신한 그는 특허등록을 거쳐 지난해 10월 생산.판매에 나섰다. 직원 3명과 함께 발로 뛴 결과 8개월만에 할인점.백화점 등 1000개 점포를 판매망으로 확보했다. 매출액은 5억원.

그는 "필 그립은 실리콘 재질이어서 해(害)가 없는데다 연필에 끼우는 기존제품과 달리 엄지와 검지 중간에 끼워 연필만 쥐고 쓰는 제품이어서 교정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어른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새 제품을 곧 내놓고 해외수출도 할 계획이다. 그는 "성공을 확신하고 노력하면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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