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구씨는 통폐합 뒤만 봐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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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희복(姜熙復)전 조폐공사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두달 가까이 진행됐던 파업유도 사건 특별검사의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특검은 9일 저녁 전체수사팀 회의에서 2시간여 동안 법률 검토작업 끝에 姜전사장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키로 최종 결정했다.

조폐창 조기 통.폐합을 강행, 파업을 유도해 회사 생산업무에 차질을 빚게 했다는 것이다.

특검 관계자는 "조기 통.폐합 결정의 중심엔 당연히 공사의 최고 책임자인 姜전사장이 있다" 고 말했다.

결국 파업유도의 주모자를 姜전사장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같은 수사구도는 지난 8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는 다르다.

당시 검찰은 姜전사장이 진형구(秦炯九)전 대검 공안부장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조기 통.폐합을 추진했다며 姜전사장은 일종의 피해자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검은 姜전사장이 파업유도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秦전부장은 그 뒤를 봐줬다는 쪽으로 사건을 파악, 검찰 수사결과의 주종관계를 뒤바꿨다.

특검 관계자는 "우리는 이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며 "姜전사장의 역할이 지난 검찰수사에서는 등한시된 것 같다" 고 부연했다.

특검은 또 초미의 관심사였던 정부기관의 조직적인 파업유도 공모부분에 대해서는 "공모는 없었다" 고 결론을 내렸다.

특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그동안 대검과 대전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물론 기획예산처.국정원.경찰.노동청 등 지난해 공안합수부회의 참석자들을 모두 소환 조사했다.

특검의 소환대상자 중엔 공개된 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 등 외에 김상남(金相男)노동부차관과 국정원 관계자까지 포함됐을 정도다.

조직적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대전지검 공안부 작성문건들에 대해서도 특검은 수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전지방노동청이라는 원(原)작성자를 빼고 어휘.순서만을 일부 바꾼 채 마치 대전지검에서 작성한 기획안처럼 대검에까지 이 문건을 보고했다는 사실은 검찰이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할 부분이라는 게 특검의 지적이다.

특검 관계자는 "불필요한 문건에 대해서까지 자신들의 업적으로 만들려 했던 검찰 공안기능의 문제점도 보고서에 담겠다" 고 말했다.

또 정부기관의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고 해서 특검이 당시 공안합수부회의에 참여했던 기관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파업유도에 관한 한 법적 책임은 없지만 지난해 조폐공사 분규 당시 관련기관들이 과연 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했는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검 관계자는 "정당한 업무범위 내에서 역할을 했는지가 관건"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특검을 이탈했던 변호사.시민단체 인사들이 특검 수사가 진상 규명에 이르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를 전후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벼르고 있어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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