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홍용만씨 27~31일 광주서 20세기 인물초상화전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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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도 제가 과문하거나 사진자료가 없는 탓에 그리지 못한 분도 있어 안타깝고 후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

광주 예술의 거리 궁동갤러리 5층에 있는 서양화가 홍용만(洪容滿.59)씨의 화실. 8호짜리 캔버스에 유성 물감으로 그린 초상화 1백50여점이 즐비하고 막 작업을 끝낸 화폭에 낙관을 그려 넣는 손길이 진지하다.

'보고 싶은 얼굴들' 이란 주제로 27~31일 남도예술회관에 걸릴 작품들이다.

독립운동가 서재필, 판소리 동편제 대가 송만갑,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호남은행 설립자 현준호, 동양화가 허백련, 금호그룹 창업자 박인천씨, 김대중 대통령, 윤공희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등등….

광주.전남 출신으로 지난 1백년간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1900년대를 족적이 큰 인물들의 초상화로 정리하고 싶었고, 97년 7월부터 만사를 제쳐놓고 이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인물 선정이 힘들었다.

각종 자료를 뒤지고 향토사에 해박한 인사들에게 자문 받아 대상을 골랐으나 여기저기서 뒷소리가 나왔다.

'일제 앞잡이였다' '여자관계가 복잡한 사람이었다' 는 등등.

"어른들을 감히 제가 평가.재조명할 수는 없고, '우리 고장에 이런 분들이 계셨다' 고 되짚어보는 계기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

원래 50여명만 그릴 작정이었으나 숫자를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선정된 인사들과 비교하면서 "우리 어른이 그 사람만 못한 게 뭐냐" 며 압력(□)을 넣는 후손들이 많았던 것이다.

후손들도 독(獨)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아 빛바랜 잡지의 단체사진 속에 있는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얼굴을 보고 그린 게 적지 않다.

광주학생운동 주역 송 홍(宋 鴻)선생 같은 분은 사진이 남아 있는 게 없어 동상을 참조했다.

또 작품마다 별생각 없이 영문 사인을 했다 "어른 얼굴에 건방지게…" 라는 소리가 들려 일일이 덧칠해 지우고 낙관을 그려 넣기도 했다.

洪씨는 "하도 말이 많아 포기 직전까지 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전시를 시작하면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두렵기도 하다" 고 밝혔다.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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